제주민예총, 8일 목시물굴 찾아 ‘4·3해원상생굿’ 펼쳐…4·3방사탑도 세워

8일 작지만 의미 있는 4·3위령제가 선흘리에서 열렸다. 제주민예총이 선흘 목시물굴에서 마련한 ‘찾아가는 현장위령제-4·3해원상생굿’이 그것이다.

제주민예총은 지난 2002년부터 다랑쉬굴을 시작으로 북촌리 학살터, 화북 곤을동, 표선 백사장, 이번 선흘리 목시물굴까지 4·3 학살의 현장이었던 바로 그 장소를 찾아가 한바탕 진혼굿을 벌이고 있다. 죽은 자, 살아남은 자 모두에게 남아있는 그날의 원통함을 위로하고, 상처받은 기억을 치유해주기 위함이다.

선흘곶 목시물굴에서 굿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선흘리 주민들도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촌로들은 종일 굿판을 지켰다. 빌고 또 빌었으며, 눈시울을 이따금씩 훔쳐냈다.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어김없이 그날의 이야기였다. ‘남녀 5명씩 엉물에서 10명이 죽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딸이 바로 목시물굴서 죽었다, 금방 풀려날 줄 알고 밥하고 있는데 함덕으로 끌려간 조카가 죽었다고 하더라’ 그날의 기억은 끝없는 실타래처럼 풀려져 나왔다.

조천읍 중산간 동쪽 끝에 자리잡은 선흘리. 4·3당시 선흘리의 피해는 막심했다. 11월 몇몇 마을주민들이 총살당하고 해변마을로 내려갔던 소개민들 마저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인 피바람은 몰아쳤다. 초토화작전이 시작되자 주민들은 동백나무가 우거지고 자연동굴이 많은 선흘곶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11월25일 반못굴(도틀굴)이 발각돼 15명이 총살당하고 다음날 목시물굴이 발각된다.

목시물굴은 약 100m 정도로 작은 굴이지만 당시 200여명 이상의 선흘주민들이 은신했던 곳으로, 이날 40여명이 목숨을 잃게 된다. 총살 후 휘발유를 뿌려 모두 불에 태웠는데, 이날 해원상생굿에서는 시체를 태웠던 바로 그 장소에 죽은 이들의 나무위패를 모시기도 했다. 이어 27일에는 밴뱅디굴이 잇따라 발각됨으로써 선흘리는 몇일만에 초토화된다.

목시물굴·밴뱅디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김형조씨는 이날 굿이 열리는 목시물굴을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특히 김씨는 희생자 명단을 적은 노트를 두 권 만들어 하나는 자신이 보관하고,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생자명단을 알리기 위해 하나는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묻어두면서까지 그들의 죽음을 알리려했다.

이날 해원상생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의 집전으로 종일 마련됐다. 이에 앞서 놀이패 한라산과 가수 최상돈, 풍물굿패 신나락의 연물놀이, 김경훈씨의 시굿 등이 마련됐으며, 4·3방사탑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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