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포저수지는 지난 50년대 축조한 것으로 토심이 얕고 '숨골'때문에 만수가 되는 일이 드물다. 이곳에서 밭 하나 길 하나 건너면 웃저수지가 있다.


◈ 소로곶못·판포저수지(한경면 판포리)


 이제는 완연한 여름이다.푸르른 신록이 산과 들을 감싼 지금 그 풍경만 봐도 코 끝에 싱그러운 내음이 감돈다.

 한경면 판포리.제주말을 빌린다면 널개(板浦)에 해당한다.소가 남북으로 길게 드러누운 듯 나지막한 널개오름(板浦岳·표고 93.2m)의 자태가 무척 여유롭다.

 표고 93.2m의 이 오름은 솔숲과 함께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게 특징이다.아카시아 나무에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송충방제 구실을 한다. 일제(日帝)때 많이 심은 것이 이제는 숲을 이룰 정도로 무성해졌다고 한다.

 판포리는 크게 마을의 중심인 거릿골(仲洞)과 웃동네(上洞),앞동네(前洞),새가름(新洞),곶가름(禾洞),엄수개(新明洞),수쟁이(水掌洞) 등 7개 자연취락으로 이뤄져 있다.

 소로곶못은 널개오름 서쪽 기슭(해발 35m),판포리에서 조수리로 이어지는 도로옆에 자리잡고 있다.상동과 전동 경계지경에 해당된다.

 이 못은 지형이 낮은데다 널개오름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여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주로 우마급수용으로 활용됐다.

 마을주민 함영진씨(46)는 “지금이야 도로 확장과 함께 상당부분 잘려나간 상태이나 과거에는 한경면 관내에서 두모리의 ‘멋못’ 다음으로 가장 큰 못이었다”고 회고 했다.

 현재 못 면적은 450㎡가량 된다.비가 많이 왔을 때는 물이 흘러넘쳐 인근 농경지에 침수피해를 줘 지난 99년 5∼6월께 시멘트로 둑을 쌓게 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음용수로 활용됐던 호강물이 있다.지난 봄 가뭄때 농업용수로 활용되면서 소로곶못과 호강물이 바닥이 드러낸 게 무척 아쉽다.

 이 호강물과 소로곶못은 원래 서로 연결된 것이었으나 이 사이에 폭 2m가량의 시멘트길이 개설됨에 따라 차단됐다.

 편리함만 쫓아 소로곶못과 호강물 사이를 가로 지르는 이 길 때문에 이 일대는 상생과 순환의 원리가 깨지고 있다.

 생태계는 진실에 근거한다.왜,그 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지금부터라도 습지를 매립하고 도로를 개설하는 식은 공사는 중단돼야 한다.그래야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판포저수지는 1950년대 중반에 축조된 것으로 도내 최초의 인공저수지다.해발 38m.전동 지경에 해당하며 소로곶못에서 조수리쪽으로 200m가량 더 올라간 곳에 자리잡고 있다.못 크기가 1만㎡가량 되는 비교적 큰 저수지다.

 마을주민 이성국씨(62)는 “박희경리장 시절인데,마을주민들이 돌아가며 못을 팠다.당시로선 무척 큰 공사였다”고 회고했다.

 지금처럼 포크레인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삽과 괭이질로 일일이 바닥을 팠다.또 바닥의 흙을 긁어모은 다음 긴 나무막대에다 베를 묶어 네모 반듯하게 둑을 쌓았다고 했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그 날 일당은 광목과 밀가루로 대신했다.

 7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이 달아오를 즈음에는 둑 가운데를 터 수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저수지를 축조하고 난 뒤에는 만수(滿水)가 되는 일이 드물었다.

 사람들은 이곳 어디엔가 ‘숨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이 일대는 암반 위의 토심이 얇아 물이 빠진다는 것이다.이씨는 “3년전에 마을에서 ‘숨골’ 두군데를 찾아 정비했다.그런데도 물이 계속 바지는 것을 보면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숨골’이 더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곳에는 소금쟁이와 함께 창포·개여뀌·흰여뀌·빗자루국화·개망초·큰고랭이·세모고랭이·개구리밥·올챙이솔·사마귀풀·가래 등의 식물이 서식한다.

 또 가끔 흰뺨검둥오리와 백로·왜가리 등이 이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다시 널개오름 쪽으로 길 하나 밭하나 건너면 속칭 ‘서느새미’라고 하는 웃저수지가 있다.면적은 600m가량되며 입구에는 ‘남양천’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눈길을 끈다.

 마른 고목을 뚫고 나온 여린 가지,한움큼의 햇살도 견디지 못하고 목을 꺾은 들꽃,개미떼처럼 뭍으로 몰려들어 와글거리는 소금쟁이…,판포저수지에서는 윤회하듯 돌고 도는 자연의 숨소리와 생명의 충만함을 느낄수 있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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