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섬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웃어댄다. 그럴만도 하다. 아니,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지 모른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희한한 지명을 소개하는 자리에 ‘썩은섬’이 당당히 들기도 했다. 세상에 썩은섬은 대체 어디 있을까? 얼마나 썩었길래 썩은섬이라 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참에 썩은섬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고장의 지명 얘기를 풀어보는 건 어떨까. 우선은 썩은섬 얘기부터 한다.

   
 
  ▲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면 썩은섬은 육지가 된다.  
 
썩은섬이라고 하면 제주도 사람들도 낯설테다. 지도를 찾아볼까? 썩은섬은 대체 어디에 붙었는지. 아무리 눈을 비비고, 돋보기를 들이대더라도 썩은섬은 흔적도 없다. 그런데 왜 썩은섬 얘기를 하냐고? 원래 이름이 썩은섬이니까.

썩은섬은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다. 바닷물이 갈라져 육지가 되기도 하는 섬이다. ‘모세의 기적’이 바로 이 곳에서 이뤄진다.

‘모세의 기적’이라고 하니 거창하기도 하지만 분명 이 곳은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린다. 전남 진도의 바다갈림이나 충남 제부도의 바다갈림을 볼 양이라면 썩은섬을 찾는게 보다 쉽다. 하루에 2번씩이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썩은섬은 육지(제주 본섬)와의 거리가 불과 200m다. 바다가 갈리면 양 옆으로 80m에 달하는 새로운 땅이 얼굴을 드러낸다. 한 번 물길이 열리면 3시간에서 많게는 5시간까지 섬은 뭍이 된다.

   
 
  ▲ 물이 빠지기전의 썩은섬  
 
주의할 점도 있다. 많아야 5시간이기 때문에 섬에 푹 빠져 있다가는 썩은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는 점을 있지 말아야 한다.

예전, 그러니까 1960년대까지는 물이 빠질 때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동서로 길게 누워있는 이 섬은 남북으로 약간의 경사가 있다. 동쪽과 서쪽의 느낌은 서로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동쪽의 느낌이 좋다. 동쪽 끝에서 섶섬과 문섬이 형제처럼 마주해 있다. 범섬도 눈 앞에 드러난다. 북쪽으로는 가장 아름답다는 월드컵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을 잊기에 그만이다. 때문에 오래 앉아 세월을 낚다가는 그만 섬에 갇히고 만다.

그런데 왜 썩은섬일까. 섬의 토질이 죽은 흙이어서 그렇다고들 한다. 이 곳의 흙은 원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푸석푸석하다. 그래서인지 물에 뜨는 돌인 부석(浮石)이 많다.

   
 
  ▲ 썩은섬에서 바라본 범섬  
 
설에 따르면 죽은 고래가 떠밀려와 썩은 냄새가 고약해 썩은섬이라고도 하며, 혹은 뭍과 연결돼 있어 섬의 원래 의미에 맞지 않아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전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썩은섬은 지도에 없다고 했다. 뭘로 돼 있을까. 지도에는 서건도라고 돼 있다. 분명 잘못된 이름이다.

탐라고지도(1709년)에는 썩은섬의 뜻을 빌어 부도(腐島)라고 했으며, 이후 나타난 지도에는 소리를 빌어 서근도(鋤近島)라고 했다. 서귀포시지명유래집에는 ‘써근섬’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지금의 서건도는 국립지리원에서 지명을 조사할 때 ‘썩은섬’을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면서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이름 찾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까보다.

한번 찾아가 보자. 월드컵경기장 주차장 쪽에서 바다로 향하다보면 오른쪽에 강정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얼마 못 가 ‘썩은섬’이라는 정류소 표지판이 나온다. 방송을 탔던 바로 그 정류소 표지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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