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 시인·예비군 지휘관>

   
 
  ▲ 최창일 시인·예비군 지휘관  
 
신록이 어느새 듬뿍듬뿍 시새움 속에 아침 이슬 먹고 무더운 햇살 받으며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초록으로 물들여 강물이 흘러가듯 지나간 역사를 회고하며 51번째 맞는 현충일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 연연히 이어온 백의민족이요, 단일민족이다.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교차되는 위치에 놓여 있어 어쩌면 숙명의 가혹한 시련과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한 눈물의 역사를 이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아리랑’이라는 눈물의 노래를 부르고, 오늘도 남쪽과 북쪽이 한반도기를 손에 들고 7000만 국민이 통일 염원을 불태우고 있지 않는가.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꿈을 이루었고, 2006년 6월 독일월드컵에서 4강 재현의 꿈을 그리며 피와 땀, 눈물이 배어 있는 힘으로 이뤄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힘은 오천년 역사 속에 900여회 외침을 받아 수학적 통계로, 900으로 나누면 6년에 한번은 크고 작은 전쟁을 했다는 지론에 이를 것 같다.

그 숱한 전쟁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조부님과 부모님은 36년 일제 강점기에 만주땅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우리문화와 재산을 약탈당하고, 2차대전의 종국에는 일본군의 강제징병으로 남방군도에서 이름없이 죽어야 했다. 강제 징용에 이끌려 얼음이 뒤덮인 사할린 땅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해방이 되면서 제주 4·3의 비극, 그리고 6·25 전쟁참화를 겪으며 인고의 처절한 삶 속에 언젠가는 꿈에 그리는 그날이 있을 것이라고 숭고한 기다림의 문화가 있기에 오늘날 이처럼 호흡하며 살고 있지 않나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고자 기미년 3월1일 독립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불길같이 일어나 왜놈의 총칼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분열히 산화했으며, 또한 이역만리 타국에서 오로지 잃어버린 조국을 찾겠다고 이름 없이 순국한 분들의 이름표가 달린 조국의 혼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 딸들이 세계를 향하여 뛰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1974년 8월15일 제29회 광복절 기념행사 기념일에 앞서 60여일동안 서울 국립묘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머리까지 백발이 된 할머니가 쌀밥과 고기국에 과일 서너 가지를 묘비 앞에 차려 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 보았는데, 그날이 아들 생일날이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사연은 이러했다. 할머니의 아들은 군에서 불도저 운전병으로 최전방에서 작업을 하다가 불도저가 구르는 바람에 순직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 하나 믿고 살다가 불의에 아들을 잃은지 7년이라면서 매년 아들 생일날은 국립묘지에 있는 아들을 찾아 대전에서 온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어머니로서 아들을 낳을 때 산고의 고통과 20여년을 키워온 정성과 사랑이 깃들어있는 어머니의 혼이 있기에 이날을 찾는가 보다.

이외에도 국립묘지를 찾는 유가족을 보면 가족 혹은 친구, 미망인과 자녀분들이 매일 찾아오는가 하면, 일주일에 한번, 보름에 한번, 또는 국경일, 돌아가신 날, 생일날 등에 찾아오기도 한다. 묘비를 깨끗이 손질하고 꽃병에 꽃도 새것으로 갈고, 다소나마 차려온 음식도 묘비 앞에 올리고, 명복을 빌면서 눈물짓고 통곡하는 이들을 볼 때는 저절로 숙연해 진다.

정말로 국가를 위하고 민족을 위해, 가깝게는 이웃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목숨 받친 호국영령이 있기에 이 나라가 있는 것이다. 아마 나라가 없다면 죽어서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예언했듯이 ‘동방의 등불’이란 시는 회고(懷古)의 감상을 노래한 시가 아니고 미래의 밝은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시가 되어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 되었고, 세계경제 10대 강국·IT강국을 이끌고, 세계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50년 역사에 민주주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선열들의 애국, 애족, 애향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정과 혼이 담겨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호국의 달 6월은 뜻 깊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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