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상민이 젖병 만지지 마세요. 제가 할게요. 집안일 도우실 생각도 마시구요. 그냥 맛있는 거 잡수시고 편안히 계세요."/"제발 좀 울지 마세요.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면 되지, 나만 보면 양로원 가시겠다고 울기만 하시면, 어휴……."/"당신 어머님은 뭐가 그렇게 아시고 싶은 게 많아요. 뭐가 그렇게 간섭하고 싶은 게 많아요. 그냥 가만 계시기만 하면 되지. 정말 간섭하시는 것 때문에 미치겠어."

60대 초반의 상민이 할머니는 "질긴 목숨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아무 말 말고 가만 있으라 하는데, 그래야지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얘길하게 되고…" 이렇게 소설책 몇 권은 될 거라는 인생사 얘기를 시작하면 어디쯤에서도 멈추게 할 수 없다.

요즘 세대별 의식구조의 특징을 보면, 10대는 타인을 고려 않는다(좋은 것 싫은 것 뚜렷이 구분). 싫으면 안 한다. 2, 30대는 인간미 상실(상대에 관계없이 책임감 투철하다) 자기 할 일만 한다. 4, 50대는 혼란기, 샌드위치(앞뒤로 맞추느라 스트레스 심화).

60대는 자기 희생(자기는 없다).

미경 씨는 30대 초반의 반듯한 사람이다. 며느리로서 해야 될 일을 소홀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의사를 상대와 관계없이 분명히 전달한다. "젊은이. 내가 양로원 가고 싶은 것은 아들 며느리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야. 나는 사람 속에서 살고 싶어."

사람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시장과 백화점을 비유해 볼까. 시장에 가면 지저분하긴 하지만, 펄펄 살아 있는 '너'와 '나'를 만날 수 있다. 백화점에 가면 정갈한 '너'와 내가 질서정연하게 우아하게 만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백화점식 삶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함께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불행이 아니라 소외다.

도정된 곡식처럼 매끄럽기만 한, 마치 로봇이 메모리된 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광폭함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우울, 슬픔, 허기짐, 공허, 불안으로 압박감의 증세와 자기 조절 능력의 퇴화를 부른다. 편안히 모시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미경 씨. 간섭하는 시어머니지만 그렇게 깍듯이 모실 수 있는 것은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내가 살아가야 할 삶에서 나의 조그마한, 유한한 앎을 가지고 타인이 함께 하는 무한한 삶의 빛깔들을 '그 무엇이다'라고 자신 있게 규정하는 어리석은 어른으로 늙어가지 맙시다.<제주여민회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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