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열기가 너무 뜨거워 근 3개월동안 본란 확대경을 쉬었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선거판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엄청난 정치적 사건들이 요동쳤다. 그런데도 글을 쓰지않고 팔짱만 끼고 있어야 하는게 여간 고통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손가락이 부르르 떨렸다. 또 머리털이 삐죽 삐죽 솟구쳤다. 그러나 당초 다짐대로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인내하며 침묵을 지키기로 했던 것이다.

마침내 한바탕 선거는 끝났다. 벌써 1주일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이제와서 다 지나간 일을 곱씹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으로 모든게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

한번 선거과정을 유심히 되돌아 보라. 얼마나 우리를 아연케 했는가. 또 얼마나 우리를 부끄럽고 실망스럽게 했는가. 그냥 ‘과거사’로만 매도해버리기엔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다.

그들이 보여준 추태들은 한마디로 구역질나는 저질 코미디였다. 첫번째는 정치1번지라던 제주가 ‘철새도래 1번지’로 오염된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김태환 지사의 ‘갈지 자’ 행보였다.

또 권력욕을 연장키 위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정치꾼’도 많았다. 그런 ‘탈당파’들이 끝내 승리한 것은 아무래도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수 없다.

두번째는 시장 군수들의 ‘정치적 야합’이다. 이 때문에 사상 유례없는 ‘도-시·군 권한대행 체제’가 운영돼 전국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역과 기초등 모든 자치단체가 동시에 권한대행체제가 됐던 적이 세계적으로 과연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이 과정에서 그들의 거짓말과 말 바꾸기는 정말로 가관이다. 특히 김영훈 시장은 행정구조개편 때만 하더라도 ‘나라 팔아먹는 이완용’ 운운하다가 이번 선거때는 그 ‘적장’의 품에 안겨 정치생명을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낙선의 고배를 마신 다른 시장 군수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미 도민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재론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세번째는 ‘뻔뻔스런 배반’이다. 하루아침에 적과 동지가 뒤바뀌는 정치혐오감을 연출해낸 것이다. 도의원 후보인 경우 앞다퉈 입당했다가 정작 공천에서 떨어지면 우르르 탈당하는 구태가 속출했다.

네번째는 전직 고관들의 줄서기이다. 사회지도층 명망가들이 저마다 도지사 후보 선거캠프에 둥지를 틀었다. 심지어는 피선거권이 박탈된 전직 지사들까지 양편으로 다시 갈라섰다. 

지역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데 솔선해야할 지도층 인사들이 ‘정치식객’으로 전락한 것은 여간 개탄스런 일이 아니다. 제주에 존경받는 원로가 없는 결정적 이유이다. 이러니 지역현안에 대해 어른들의 말발이 제대로 먹힐 리가 있겠는가.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간 일이라고 그냥 덮으려 해서는 안된다.

역사는 이렇게 추하고 역겨운 사실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당락의 결과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 그같은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역사는 똑바로 기록해 둬야 한다. 그래야 이같은 추태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지방선거를 일신의 영달이나 입신양명의 호기로 삼아서는 안된다.<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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