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태 코치의 관전평 한국-프랑스전

   
 
  ▲ 김현태 코치  
 
한국 축구가 운이 좋은 것인지 강한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경기였다. 심판의 판정으로 도움을 얻었다는 생각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전반에 보여준 경기는 한국 축구의 약점이 드러난 것이었고 후반에 보여준 경기는 한국 축구의 강점이 드러난 것이었다.

프랑스 대표팀은 앙리를 원톱으로 공격진을 구성한 4-2-3-1 전술로 나왔고 이에 맞서 한국 대표팀은 토고전에서의 3-4-3과 달리 4-3-3 전형으로 전반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개인 기술과 패싱 능력이 뛰어나고 앙리의 스피드와 골결정력이 탁월하지만, 평균 연령이 29세로 높아 체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프랑스는 전반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하였고, 한국 팀에게 거의 슈팅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 들어 지단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한국은 개인 기술이 떨어지지만 체력이 앞선다는 점을 핵심 요소로 삼아 후반 중반 이후 상대가 지쳤을 때 승부를 거는 방법을 택하였고 역습과 세트플레이에 중점을 두고 경기에 임하였다. 

전반에 상대 미드필더와 공격진이 우리의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로 움직이며 편하게 볼을 받도록 허용한 것은 우리 중앙수비수들의 움직임이나 라인 유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 공격 때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이 좁고 타이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앙리의 스피드와 움직임에 부담을 느껴 라인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결국 윌토르의 슈팅을 김남일이 막다 수비수 가운데로 흘러 앙리가 전반 9분에 득점하게 한 원인이 되었고 전반 내내 이러한 양상이 지속되었다.

또한, 공격으로 전환 때에 미드필더와 수비진에서 공격수의 발밑에 패스를 하지 못하고 계속 롱킥만 시도한 점도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전반 내내 압박의 강도를 좋은 페이스로 유지한 것이 후반에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덧붙여 이운재가 여러 차례 신들린 선방을 한 것도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대표팀을 구원한 결정적 수훈으로 인정할 만하다. 전반 31분 프랑스 미드필더 비에라는 정확하게 띄워 준 코너킥을 받아 헤딩슛을 시도했고 이 볼은 골라인을 넘어선 듯했다.

그러나 주심은 경기를 속개시켰고 프랑스 선수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경기를 이어갔다. FIFA 홈페이지에서는 비디오판독 결과 이운재가 볼이 라인을 넘어가기 전에 쳐낸 것으로 보도했다.

후반 들어 컨디션이 좋지 못한 이을용을 설기현과 교체하고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리면서 경기가 풀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쉽게 볼을 받고 드리블하거나 공격수의 움직임에 맞춰 패스를 하는 박지성의 특기가 정체된 플레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반 이후에 교체된 안정환이 원터치나 투터치 이내에서 패스하고 상대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 것도 경기의 흐름에 변화를 주었다. 후반에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지난 2002년 월드컵의 경험을 쌓아 대담해지고 뒷심이 강해진 한국 팀은 더 이상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점점 지쳐가는 프랑스의 공간이 넓어지게 되었고, 후반 36분 안정환의 원터치 패스와 설기현의 크로스를 거친 공을 조재진이 문전으로 달려드는 박지성에게 헤딩 패스로 건네고 박지성이 절묘하게 발끝으로 슈팅하여 81분간의 고난에서 한국팀을 구출하게 된다. 때로는 무승부가 승리 이상으로 값지다는 것을 보여준 투혼의 경기였다. <김현태 제주 유나이티드FC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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