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이전 선거공약으로 재미를 봤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그는 이 공약을 앞세워 보수층이 두터운 충청권을 압도했다.

그러나 행정수도이전은 처음부터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 여야의 극한대립 속에 국론분열이 심화됐다. 끝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파국을 맞았던 것이다.

재미를 본 선거공약은 더 있다. 경제 성장률 7%와 250만개 일자리 창출 등이다. 과연 이같은 공약은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가. 그것은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나치게 공약실천에 집착하다 시행착오를 빚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그 이전 노태우 대통령도 그랬다. 그는 대선때 2년후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공약했다. 이것이 두고두고 그를 옥죄었다. 그러다가 끝내 공약의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그는 공약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재임시절 내내 공약의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50여개의 공약을 수첩에 적어다닐 정도였다. 임기를 마치면서 그는 “재임중 손대지 못한 공약은 얼마 되지않는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그러나 그로인해 국가는 예산낭비와 국론분열이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새만금 사업이나 지역공항건설과 같은 골칫덩어리들이 무리하게 추진됐기 때문이다.

이달초 김태환 지사는 취임 한달을 맞아 공약실천계획을 발표했다. 순간 많은 도민들이 놀라움과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재원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과연 공약이행에 필요한 7조4274억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전체 재원중 공공부문만 4조8376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정치적인 파워가 없는 무소속 도지사가 무슨 재주로 그런 엄청난 예산을 따올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민간자본 2조5898억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과 같이 경직된 행정마인드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또한 길지도 않은 4년 임기중에 어떻게 그많은 일을 추진한다는 것인지도 미덥지 못하다. 최종 확정된 209건의 공약이행 사업은 결코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1인당 소득 3만달러나, 또 2만개 일자리 창출도 그렇다. 의욕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김도정은 이제 공약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루빨리 털어버리는 게 좋다. 예산 뒷받침이 어려운 비현실적인 사업은 과감히 털고가야 한다. 실현가능성과 완급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다 보면 행정의 왜곡과 예산낭비를 초래할수 있다. 때문에 도민들도 기어이 공약을 이행하라고 물고 늘어져서는 안된다.

물론 공약을 폐기처분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공약은 유권자들에게 행한 공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투표의 중요한 선택기준이며 책임정치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지켜야 마땅하다.

하지만 공약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무리하게 끌고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려운 도민 살림을 거덜낼 수도 있다.

그런 만큼 김지사도 이제는 실천 불가능한 공약을 도민 앞에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는 도민설득 작업에 직접 나서야 한다. 그래야 아까운 시간과 예산을 허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공약이행을 치적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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