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4·3특별법에 의해 희생자 신고가 2000년 6개월, 2001년 3개월, 2004년 3개월 등 세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 기간 제주도를 비롯한 시 군-읍 면 동 행정기관을 통해 1만4375명이 사망 행방불명 후유장애자로 신고됐다.

그러나 신고과정에서 예상외로 어려운 절차와 엄격한 규정 때문에 유족과 신고자들이 서류작성에 많은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신고서는 희생자의 인적사실과 신고자와의 관계는 물론 50여년전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희생사실을 ‘6하 원칙’에 따라 적시할 것과 작성된 신고내용의 사실관계 입증을 위해 보증인 3명의 보증서를 요구했다.

또 이렇게 작성 제출된 신고서는 공무원들이 신고자와 직접 면담을 통해 작성한 사실조사서(면담조서)를 첨부해야 공식적인 신고서가 될 수 있었다.

작성된 신고서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실무위원회의 1차 심사를 거쳐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위원회(이하 중앙위원회)의 최종심사를 거쳐 의결됐다. 그러나 이 사이 중앙위원회 희생자심사소위원회 심사의결을 또 거쳐야 했고, 이 과정에서 심사에서 탈락한 희생자도 발생했다.

이것이 전부다.

억울한 희생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회복을 해달라고 그토록 외치고, 또 숨죽여 살아온 통한의 세월, 국회에서 4·3특별법 통과와 정부의 제정 공표, 4·3진상조사보고서 확정과 대통령 사과, 그리고 제58주기 4·3위령제에 참석한 대통령에 대해 도 내외에서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희생자와 그 유족에게는 제주도지사(실무위원회 위원장)가 발급한 4·3희생자 결정서 달랑 한 장이 전부다.

지금 영문도 모른 채 반세기 전 정든 집과 가족들과 생이별 당한 반문명적, 반역사적 제주도 말살사건에 대해 △왜 △어디서 △어떻게 △누가 죽였는지가 없는 4·3특별법이 법 제정 6년만에 국회에서 개정되고 있다.  

입만 열면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이네,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제노사이드라고 떠들면서, 진상규명 조항이 모조리 삭제된 개정안을 두고 4·3평화재단의 설립근거가 마련돼 앞으로 모든 4·3문제는 재단으로 할 수 있다거나, 국회 법 개정은 개정이기에 다시 하면 된다는 등 해괴한 논리로 진상규명을 비켜가고자 하는 집단들이 터무니없는 개정안이라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분위기를 호도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반세기 전 이 땅에서 자행된 반문명적, 반역사적 제주도민 말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애써 외면하는 4·3특별법이 법 제정 6년만에 국회에서 개정되고 있다.
 
그토록 어렵게 작성된 1만4000여건의 신고서마다 맺혀 있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밝혀내지는 못한다 해도 신고서 행간마다 맺힌 대다수 유족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절규마저 외면할 수는 없지 않는가.

4·3진상규명을 그만 하자는 4·3특별법 개정안을 환영하는 세력들은 진정 4·3을 역사 속으로 파묻어 버리고자 작정했단 말인가.<양동윤 / 4·3도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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