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라는 말과 같은 말로 쓰이는 풍광(風光)이라는 말은 참 흥미롭다.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바람과 빛’이라는 뜻인데, 선조들의 경치를 보는 예사롭지 않은 시선이 이 단어에 얽혀 있는 듯하다. 단순히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거기에 스며드는 바람을 생각하고 드나드는 빛을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이며, 이같이 자연을 깨뜨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 풍광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말이 돼버린 듯하다.

몇 년 전, 외국인들과 함께 한국 민속촌을 갈 기회가 있었다. 한국의 전통 문화와 건축들, 그리고 버드나무가 축 처진 옛 풍광을 살린 곳곳마다 그들은 감탄사를 내뱉었고 나는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주위 풍광을 둘러보던 내 눈에 그 미관을 확 깨는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혹여나 외국인들이 보지나 않을까 다른 곳으로 시선을 유도하면서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깨끗한 공기, 맑은 물 등의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삶의 질과 또 그 밑에 깔린 정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미관의 문제가 상당히 중요하다. 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우리 민족의 문화나 옛날 정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파트 단지가 높이 올라가고 햄버거를 먹으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물론 모든 옛 풍경을 다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파괴되지 않고 옛 정서와 자연이 살아있는 곳은 내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풍력발전 단지 반대 운동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풍력발전소를 반대하는 측의 입장은 이것이 고유의 풍광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모 일보의 기사에서는 제주 모 지역의 풍력발전 반대 운동을 마치 땅값하락 때문에 돈을 노리고 한 행동처럼 호도하기도 하였으나, 사건의 면면을 뜯어보았을 때, 돈만을 바라는 요사이의 풍조로 바라보기엔 너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들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전해줄 풍광과 유기농 먹거리를 위해서 한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또 제주의 특산품인 말 등을 키우면서 제주의 전통적인 모습을 지키는 데 일익을 담당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곳에 사는 주민 스스로가 자연 풍광을 해친다는 것을 얘기한 것은 그냥 집단 이기주의로 일축해 버리기엔 미흡한 구석이 있다.

그들이 법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불사르는 데에는 그들이 지키고 싶은 것이 있고, 그들이 살아온 터전을 그 정서를 지키고 싶은 소박한 힘이 있을 것이다. 동강 댐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한 노인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계기는 아들이 자신의 고향이 고향답게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본인에게 얘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도 고향을 고향답게, 우리 땅을 우리 땅답게 지키는 데에 너무 인색하다. 우리 것을 자랑스럽고 지킬 만큼 가치있다고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그들의 힘겨운 싸움이 결실을 맺기를 조용히 바라는 맘 간절하다. <최한창 / 한국녹색회 서울대학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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