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체결을 위한 제4차 본 협상이 다음주 제주에서 열린다. 정부는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협상작업을 마무리하고 국회비준을 거쳐 2008년부터 한미FTA를 발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한국정부에 쌀 등 일부 농산물시장과 제약시장, 자동차 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도록 요구해 우리대표단과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감귤농사 내지는 농업과 관계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제주도민들은 FTA 협상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농림부와 제주도 등 관계 당국은 감귤 생산이 제주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해 관세자유화 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유예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주 정부의 FTA체결 지원단장이 제주에 내려와 감귤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보호의지’를 밝힌데 이어 농림부장관 역시감귤에 대해 “쌀과 같은 입장에서 협상을 할 것”이라며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협상에 회의적인 일부단체들은 제주에서 반 FTA 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인다는 계획이어서 불안한 농심(農心)이 자칫 대규모 시위로 커질까 우려된다. 농업시장의 개방 확대는 농민들의 삶을 위협한다는점에서 농민들이 느끼는절박감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이런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협상에서 우리측의 안을 꼭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농민들도 과격한 시위는 삼가해야 한다.제주도민들은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이에 걸맞는이미지를 국내외에 심어주기 위해서도 평화적인 시위문화가 간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냉철하고 논리적인 시위를 통해 양국 협상단에게 제주 경제의 상황을 더 분명한 메시지로 전달해야 하며 제주도의 이미지가 폭력으로 얼룩지게 해선 안된다.

이번에제주 농민들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수준 높은 시위문화를 국내외에 보여줄 수 있다면 미래에 얻게 되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이득은 무한하리라고 생각된다. 국내적으로는 정부의 특별자치도 수준 인식에 보탬이 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해외자본의 유치나 해외관광객 유치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간 평화적인 시위가 전혀 없었던것도 아니다. 제1차 한미 FTA 본협상이 열린 워싱턴에서 한국 원정단이 주도한 시위는 모범적인 사례였다고 전해진다. 사물놀이패를 앞세운 거리 퍼레이드와 삼보일배 그리고 꽃상여를 동원한 퍼포먼스 등 갖가지 문화적 소도구를 활용하여 미국 현지인들로부터도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한미 FTA는분명 제주 농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농업이 솨퇴하느냐 아니면 이를 기회로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느냐는 이제우리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다. 자유경제 체제하에서 시장개방의 거센 파도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협상력을 잘 발휘해 FTA협상이 제주도민들이 바라는방향으로진행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감귤을 관세자유화 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일시 유예시키는 방안도 한숨 돌리는 정도의 한시적 조치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제주도 당국은 신품종개량 등으로 한국 농산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제주농업을 근본에서부터 바꿀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평화적인 시위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무슨 일에서나 반대하는 측이 있기 마련이고, 또 반대 의견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반대의견의 표시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테두리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번 제주 농민 시위가 민주적인 틀을 깨지 않고도 할 말을 다하는 ‘희망있는 시위’가 됐으면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협상력을 높여 제주도민의 시름을 덜어 줄 수 있는 좋은 길이라 생각한다. <고운호 /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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