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전남의 부속 도(島)에서 도(道)로 승격된 것은 46년 8월1일부터다.자치제도에 뜻이 있는 도내 몇몇 유지들의 건의에 의해서다.하지만 미군정하에서 몇몇 도민의 건의에 의해 단순히 도제가 실시됐다고 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수 있다.

 도제실시가 단순치 않았다는 거증자료는 군정당국의 처신에서 드러난다.리치 미군정장관은 그해 7월 12일 직권으로 도승격을 허가했다.도민건의를 받아 들인 것이라고는 했지만 속내는 달랐다.유지들의 건의를 전후,미군정내부에서 도제실시를 강력히 요청할만큼 안달이 나있었다.그 같은 속내는“제주도는 지금이나 장래에나 중요한 곳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는 그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도승격 허가에 한달 앞서 중앙기자단을 대거 동반, 제주를 직접 방문한 자리에서였다.리치의 고백은 도제실시가 제주도민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미군의 이익에 의한 것임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실제 도승격과 함께 경찰력은 물론,도단위에 가능한 군경비대가 창설등 미군정의 군사력을 크게 강화해 나갔음이 이를 웅변해 준다.

 제주도가 외부 시각에 의해 중요시되기는 비단 미군정만은 아니다.1천년전 지구촌 최대의 원제국은 당시 고려를 짓밟고, 수도 개성과 변방인 탐라에 쌍성총관부와 탐라총관부를 설치했다.원제가 고려의 수도에 버금으로 제주에 총관부를 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개성의 그것은 고려의 속국화를 위한 것이라면,탐라의 그 것은 병참기지를 위한 것이었다.이를테면 군마양성과 군선제작 등 일본 원정을 위한 전진기지였던 셈이다.원제(元帝)가 제주를 대륙과 주변 섬나라를 아우를 수 있는 전략요충지로 인식했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제주를 국제적인 전략요충지로 여기기는 1세기전 일본제국도 마찬가지였다.일제 말기 무려 7만안팎의 군사력을 집결, 미국과 최후의 항전을 치르려 했다.제주도를 본토 방위의 최전방으로 여겼음에 다름아니다.

 세계사 최대의 제국인 원제국을 비롯한 일본과 미국등 열강이 중요시 해온 제주.그런 제주를 우리 정부는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동북아의 거점이란 제주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단순히 인구 1%의 변방으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제주로 인한 한반도의 반사적 이익이 없지 않을 텐데도 그렇다.

 밖에서는 알아주는 색씨를 동네에서는 우습게 본다고 했던가.세계화를 지향하면서 제주를 우습게 여김은 국제감각이 10세기전 몽골사람만도 못하다는 얘기에 다름아닐 터.<고홍철·논설위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