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삶음악순례 일일 동행기 >, 밝혀지지 않은 4·3의 진실 ‘아직도’,‘4·3지도’ 등 답사 정보 ‘절실’

노래와 함께하는 최상돈의 4·3역사 순례(일명 ‘死삶음악순례’)가 열다섯 회를 맞았다. 지난 19일 노형동 일대에서였다. 우연의 일치였는가, 이날은 1948년 11월 19일, 당시 노형의 최초 집단학살이 있던 날이다. 순례단은 잃어버린 마을, 정확히는 ‘빼앗긴 마을’인 함박이굴, 개진이, 드르구릉, 방일이, 해안리 상동(속칭 ‘리생이’ )을 찾아 노래와 시로 그날 희생된 원혼들을 달랬다.

◇‘死’를 삶으로 이끄는 음악순례

‘死삶음악순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민중가수인 최상돈씨가 기획했다. 그는 이번 순례에 대해 “4·3 2세대로 4·3의 원혼들에게 뭔가 진 빚을 갚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중가수로서 투쟁의 현장을 지켜선 그 역시 4·3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진실들이 곳곳에 포진돼 있기에 더욱 힘든 과제였을 것이다. 死삶음악순례 이야기가 나올 즈음에도 그의 고민은 여전했다.

 ‘손에 닿을 듯, 그러나 정작 닿지 않은 4·3이야기들을 어떻게 만날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노래였다. 노래로 4·3흔적들을 찾아가는 것, 그 흔적의 주인들을 추억하는 것, 그 원혼들을 위해  ‘노래의 잔’으로 제를 지내는 것이다.

그는 길을 떠났다. 2월 26일 순례자 25명을 대동하고 제주시 신산공원 방사탑, 북받힌밧, 평화공원으로 떠난 것이 첫 순례였다.

그는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북받힌밧(일명 이덕구산전)에서  ‘산전의 노래’ 등 현장에서 영감을 얻은 곡들을 헌정했다. 
 
그리고…. ‘死삶음악순례’는 북촌리, 구억국민학교 터, 용강마을, 애월어음리, 주정공장터 등 4·3의 한이 서린 지역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랬던 것이 벌써 15회 째를 맞았다.

◇“소풍이 아니더군요. 아픔 함께 하고 싶어요”

지난 19일 노형동 일대에 비가 내렸다. 이날 열다섯 번째 死삶음악순례에는 안내를 맡은 강덕환씨(시인. 그는 노형동 토박이다)와 최상돈씨, 4·3연구소·놀이패 한라산 관계자,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지역문학론 수업을 받는 재학생 등 15명이 동행했다.

강덕환씨는 함박이굴에서 지금은 온데 간데 없으나,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생가 있던 자리를 지목하는 등 5시간에 걸쳐 친절한 안내로 순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날은 노형의 최초 집단학살이 있던 날(1948년 11월 19일. 양력)이어서인지 순례단은 걸음 하나 떼는 것에도 조심하는 것 같았다.

드르구릉· ‘리생이’ 입구의  ‘잃어버린 마을 표지석’에서 작은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시낭송과 노래공연이 그것이다.

순례단은 4·3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강덕환 시 ‘山心이의 딸’,  ‘이제랑 오십서’ 등을 낭송하면서 당시 정든 삶터를 떠나야 했던 주민들, 부모 형제와 이웃의 희생을 눈물 삼키며 지켜보아야만 했던 고통들을 간접으로나마 접해보았다.

이날 순례의 후기를 묻는 자리에서 이광훈씨(제주대 국어국문학과 3년)는 “처음에는 소풍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마을의 표석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무겁다”며 “4·3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순례? 완전한 진실이 밝혀질 날까지!

최상돈씨는 이날 순례단에게  ‘제목없는 노래’(故 김경률 감독(1965∼2005)의 유작 ‘끝나지 않은 세월’주제곡)를 선사했다.

최씨가 “동백꽃 피기 전에, 꼭 돌아온다고 내게 꼭, 산에 간 후 소식 없는 보고 싶은 우리 형, 어머니 어머니라도 내 곁에 있었다면…” 으로 노래가 시작되자, 두런두런 들리던 소리들이 점차 잦아들었다. 그러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누군가의 눈가를 스쳤고, 어디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이날 순례는 끝이 났다.  死삶음악순례는 그러나 계속된다. 4·3 60주년이 되는 2008년 4·3일까지 60회를 목표로 하면서 매달 한 번은 4·3유적지를 찾아 원혼의 넋을 달랠 계획이다.

어려움도 있다. 4·3지도가 없어 숨어있는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잃어버린 마을 표석에서도 보듯이 과연 ‘잃어버린 마을이냐, 빼앗긴 마을이냐’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4·3의 진실이 많이 밝혀졌다해도 여전히 미완인 상태에서 死삶음악순례 또한 반쪽일 수밖에 없다. 

死삶음악순례는 그러나 대게의 4·3답사와는 차별을 둔다. 그것은 유적지답사 위주의 순례를 넘어, 순례기간 넋들을 위무하고, 관객과 공연자가 따로 없이 유적지에서 해원의 노래와 시로 퍼포먼스를 벌이는 광경을 연출한다.

4·3의 역사를 死삶음악순례와 같은 거울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이 어찌 死삶음악순례를 기획한 최상돈씨만의 바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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