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느 기로(耆老)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민일보의 전문가 제언난에 전 제주산업정보대
학 이용길 학장의 원로에 대한 글이 게재됐고 그 내용을 위요한 담론들이 있었다.

‘이 지역에 원로는 있는 것일까.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겸손을 버리고 쌓인 지식과 경험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해야 한다’고 하여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지역유지에 대한 존경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역유지들은 품위와 도덕성을 지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현안의 중재와 조정의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대충의 줄거리였다.

기실 지역사회 유지들은 튼실하게 번영을 일군 엘리트들이며 그러한 일념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사회의 일원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지역 유지들은 오늘날 이 지역현안에 참여하는 일은 별로 없는 듯 느껴진다. 그것은 지역유지에 대한 존경심 결핍이나 지역유지들 스스로의 겸양심에서 오는 것이라 할 것이다.

문제들이 꼬이는 것은 그 사회성의 반사이며 그리고 꼬인 문제의 해결은 구안적 비전제시가 있을 때에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에서 그 첫째는 오늘날의 사회상을 조감함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히 찰나적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거리와 시간이 비약적으로 단축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배송은 지금까지 3주간 걸렸던 것을 하룻밤 정도면 지구의 반대편까지도 넉넉하게 보내지고 있다. 물류의 시간이 이렇게 단축됨에 따라 비즈니스의 저해요인이었던 국가와 국가간의 거리와 시간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고 있으며, 제품들은 그것이 디지털화된 것이면 인터넷을 통해 12초면 그 어디에서든지 보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얼마나 앞서있는 기능이며 속도의 변화인가.

둘째는 세대간 사고방식의 격차이다.

오늘날 세대간 교차는 능히 사회의 개혁적인 의의가 전제돼 있으며, 여기에 시대성의 짙은 강약으로 표출되면서 논리의 비약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불안한 변화를 외면하면서 기성의 조건들에 집착하지만 신세대는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면서 새국면에 적응하고 기성세대가 세워놓은 기존질서로부터 탈출을 부단히 시도해 나가고 있다. 참으로 신세대들은 더 이상 기성세대의 훈육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의 다음과 같은 술회는 기성세대들에게 어떤 야릇한 시사인 듯 와닿음이 있다.

“애들에게 「안네의 일기」를 읽게 한 뒤 만약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게 되면 꼭 가져가야 할 세가지 물건을 골라보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하는 말 ‘우린 방학이면 항상 할머니댁에 놀러가는데 그때 아무것도 안가져가요.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할머니가 몽땅 사주거든요’하더라는 것”이다.

신(新)과 구(舊)와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참으로 어제사회의 도덕률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는 실상의 편린을 보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미래를 통해 현실을 계산하는 기성세대들이 어찌 오늘날의 신진들을 잘 다독거린다 할 것인가. 제3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는 지구촌에서 지역사회 유지들이 경험한 자산들은 오늘의 현안을 해결하는데는 역부족인 것이며, 그래서 흠모할만한 연로(年老)들은 있으나 전형적인 원로(元老)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기로들의 담론은 끝을 맺은 것이다. <고봉식 / 전 제주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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