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서 원로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자탄의 목소리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어느 지역보다 교육열이 높은 점을 감안할 때 각계에서 수많은 좋은 인물들이 양성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또 그런 연륜이 50년쯤 쌓이면 우뚝 솟은 대가나 존경받는 원로가 안나올 리 만무하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대가나 거목이 안보인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이상하리 만치 남을 끌어내리고 평가절하하는 식의 좋지 못한 습관이 있는 듯 싶다.
 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가장 가까운 예로 지방선거를 들어보자. 각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이미지와 득표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각 분야에서 좀 명성이 있거나 평가가 좋은 사람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참여했든, 권유에 못 이겨 참여했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선거를 도왔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얽힌 원망이나 감정을 치유하지 못한 채 적잖은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공(功)보다는 과(過)를 들추고 흑백의 논리로 사람을 재단(裁斷)하려는 현상까지 연출됐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들 앞에 내어놓기 싫은 과오가 있기 마련인 데도 잘못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관용이 모자란 탓이다.
 존경할수 있는 스승이나 명사를 갖지 못한 사회는 불행하다.학식과 덕망,능력을 갖춘 인사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
 지난 95년 8월 지역사회 원로들은 6·27 지방선거에 따른 후유증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도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도민화합을 촉구하는 등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도민들이 공감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도덕의 규범이자 문란한 질성의 회복자로서 지역원로들이 할 말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면에는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서 ‘신중’을 이유로 입을 다물어 버리는 비겁함을 봐온 탓도 있다.
 그러나 이는 권위주의 청산만을 주장하는 자라나는 세대에도 책임이 있다.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부모의 권위를 함부로 할수 없듯 사회적 어른으로 표현되는 원로들의 권위도 함부로 할수 없다.오히려 사회가 다원화되고 자유분방할수록 사회적 권위로성의 원로들의 권위가 존중돼야 한다.
 모든 난제를 지역의 원로와 상의하면서 풀어나가는 사회가 돼야 한다.명사를 길러내고 원로를 만들자.개발시대의 무중심적인 가치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그것은 필요하다. <이재홍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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