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해의 끝이다. 우리 조상들은 세밑에 차분한 마음으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면 어른들은 곡식을 내어주었고 이를 자루에 모아 밤중에 노인들만 있는 집이나, 환자가 있거나, 쌀이 없어 떡도 못하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담 너머로 던져주었다. 누가 던져 넣었는지 몰랐고, 알고도 모른체 했던 세밑의 담치기 풍습은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도 따스함이 스민 조용한 세민이었다.

그러나 근자 우리의 세밑은 송년회다 연말결산이다 해서 바쁘고, 거리와 상가엔 넘실대는 불빛 속에 쇼핑가방을 들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러한 세밑풍경을 보노라면 너무 가난해 구걸로 끼니를 이어가는 여인이 하루 종일 구걸한 돈으로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위해 부처님에게 공양한 등불이 불단 앞의 다른 화려한 등불 더미 속에서도 한밤중 내내 가장 밝게 빛났고 먼동이 틀 때까지 홀로 타, 손을 휘젓고 옷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켜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고사가 떠오른다.

도내에는 현재 노인복지시설 21곳에 1000여명, 장애인시설 16곳 710여명, 아동시설 5곳 350여명, 여성시설 7곳 170여명 등 모두 49개 시설에 223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제주시에만 소년소녀가장, 한 부모가정, 독거노인 등 생활이 어려워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7539 세대 1만3756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의 세밑은 거리의 불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바쁘고 즐거운 사람들이 넘쳐나면 넘쳐날수록 더욱 춥고 외로워지지 않을까. 각종 현대 문명의 이기와 다양한 문화들이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반면 어려운 이웃들과의 골과 그림자는 더욱 깊고 짙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소외되는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우리네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고 찾아보며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세밑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병철 / 제주시 이도2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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