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고 잘 하는 것 살려줘야"
지난 한 해 제주 교육계는 유달리 많은 잡음으로 몸살을 앓았다. 학생 몸에 살충제를 뿌린 교사, 제자를 성추행 한 교사, 교장과 여교사의 부적절한 처신 등 입에 담기 민망스러운 단어들이 잇따라 지면을 장식했다. 그럴수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사도의 길’을 걷는 ‘참 스승’의 존재는 더 빛난다. 이들이야말로 제주교육의 희망이자 제주의 미래를 살찌우는 약속이다. |
# 자장면 결의?
▲ 김승근 교장 <박민호 기자> | ||
어느 학교든 말썽부리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고, 고등학생 정도면 휴대폰·MP3는 기본 사양. 그런데 대정고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폭력 없는 학교, 무단결석 없는 학교, 휴대폰·MP3 없는 학교라는 ‘삼무운동’을 펼치고 있으니 그 내막이 궁금해졌다.
그 비결은 자장면이다. 김 교장은 말썽쟁이 학생들을 교장실에 불러다 자장면을 사줬다. 교장선생님이 야단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장면을 사주니 학생들이 꽤나 황당했던 모양이다. 이 일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에게서 하나 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김 교장은 학생회 간부회의 때도 자장면을 사준다. 학교에서 자장면을 자주 시키자 의아했던 자장면 가게 아저씨도 사연을 알게되자 선뜻 대정고에 할인혜택을 주기로 했다.
김 교장은 “아이들은 자장면을 좋아하지 않느냐. 아이들을 변화시킬 요량으로 사준 것은 아닌데 아이들이 달라지니 기쁘다”며 “이제는 교문 밖에서는 3000원인 자장면이 교문 안에서는 2000원”이라고 너털웃음이다.
김 교장의 ‘자장면 사랑’은 학생들의 ‘자장면 결의’로 이어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수업시간 전에 학생회 간부들이 휴대폰과 MP3를 수거해 교무실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대정고판 삼무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 스승의 날에 경로잔치 ▲ '자장면 사랑' 의 주인공인 김승근 교장이 '헬리온' 학생들과 자장면을 먹으면서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민호 기자>
대정고는 스승의 날도 남달랐다. 올해는 월요일이어서 못했지만 지난해는 주말인 14·15일 가파도를 방문, 주민·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베풀었다. 스승의 날에 웬 경로잔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 교장의 소신이다. 스승의 날에는 교사들이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이날 대정고 교사들은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노인들에게 돋보기 100개를 선물했고, 대정고 학생들은 관악연주를 선보였다. 뜻밖에 찾아온 손님들로 가파도 주민들은 스승의 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특별한’ 스승의 날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강기권 남제주군수도 서신을 통해 “스승의 날 행사 소식을 접하고,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한다”며 “선생님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면서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 학생들의 든든한 버팀목 ▲ 김승근 교장과 체육교사, 헬리온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호 기자>
지난 11월 댄스동아리 ‘헬리온’이 전국무대에서 힙합댄스 부문 우수상을 차지했다. 헬리온은 청소년동아리축제, 들불축제, 방어축제 등 각종 행사에 초청받아 공연할 정도로 이 지역에서는 이미 스타다.
김 교장은 댄스 연습으로 청소년수련관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밤새 체육관을 헬리온에게 개방했다. 체육관 강당에는 춤동작을 볼 수 있는 대형거울까지 설치했다.
“말로만 부르짖는 특기적성이 아닌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잘할 수 있는 특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계발시켜 주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라는 김 교장의 설명이다.
수학여행 이벤트도 화제다. 고1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지만 가정형편상 못 가는 학생들도 여럿 있다. 이들을 위해 김 교장이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수학여행 기간동안 도내 여행을 마련한 것. 유람선도 타고, 승마체험도 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었다. 이 모든 비용은 물론 공짜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학생들은 수학여행 온 것을 되레 후회했다고 한다.
# 기억에 남아있는 스승
‘스승과 제자는 없고 선생과 학생만 있다’는 게 요즘 세태다. 하지만 김 교장은 ‘선생과 학생’ 사이에 신뢰가 생기면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강조한다.
“참스승이 되려면 스스로 신뢰를 쌓는 노력을 해야 하고, 학생들이 10∼20년 후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면 몸가짐을 바르게 하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지난 73년부터 34년 동안 김 교장이 외길을 걸어온 버팀목이다. 오는 2008년 8월 퇴임하는 김 교장은 남은 하루하루를 오늘처럼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교문을 들어서면 ‘교장선생님’을 부르면서 머리위로 하트를 그리는 아이들, 김 교장이 한평생 교편을 잡은 맛을 느끼는 이유다.
* 우리 선생님은요∼ | ||||||||||||
김태오(1학년)=교장선생님은 할아버지같이 따뜻한 분이세요. 교장선생님하면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지만 우리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을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요. 교장선생님이 오래오래 우리 학교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제 생각만이 아니고요. 다른 친구들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 교장선생님은 ‘인기짱’이시거든요. 이만호(1학년)=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기둥이예요. 기둥하면 크고 듬직하잖아요. 우리 교장선생님은 키도 크시고, 덩치도 크세요. 거기에다가 마음이 남자답고 듬직해서 학생들이 기댈 수 있는 분이세요. 교장선생님이 우리학교에 계셔서 든든해요. 부모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교장선생님이 계셔서 저희 학교가 발전하고 있다고요. 교장선생님 사랑해요. 이상종(1학년)=힘들거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교장선생님께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의 마음을 잘 읽으시거든요. 교장선생님이 바쁘셔서 늘 상담은 할 수 없지만 우리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교장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물론 학교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말씀 드리면 반영되도록 노력해주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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