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후환 차단 갓난애·초등학생까지 학살
허영선씨 석사논문 「제주 4·3 아동학살 연구」
생존자들 이중의 상처 안고 살아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참극인 4·3은 나이가 어린 아동의 목숨도 빼앗았다.

제주4·3실무위원회 등이 지난 2001년 5월말 발표한 자료도 전체 희생자 1만4028명 중 15세 이하 아동 희생자가 1310명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4·3 당시 전체 희생자 10명중 1명이 아동으로 나타나는 등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허영선씨(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의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제주4·3 시기 아동학살 연구-생존자들의 구술을 중심으로」도 국가공권력에 의한 아동학살 실태를 생생히 보고했다.

특히 4·3 당시 가장 폭력에 취약했던 아동들의 피해 실태와 아동학살에 관한 연구서가 전무한 실정에서 사회적 약자인 아동의 입장에서 학살 문제를 구체화한 작업으로 평가할만하다.

논문은 가장 많은 아동 희생자가 발생하고 대량학살의 상징적인 마을이었던 북촌리와 가시리의 사례를 표본으로 무차별학살의 참혹한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1949년 1월 아동 희생자가 338명(22.5%)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는 1948년 11월 17일에 발효된 계엄령으로 인한 초토화작전 시·군·경 토벌대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빚어진 참사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아동학살은 가문의 멸족으로 이어졌는데, 태아와 갓난애도 살려두면 불씨가 된다는 이유로 학살되거나 수업을 받던 초등학생이 불려나가 총살당하는 등의 사례도 적지 않다.

아동학살을 목격하거나 체험한 37명에 대한 증언도 논문에 수록, 4·3 시기 아동학살이 비인간화의 전형 혹은 보복·후환의 불씨 제거로 무차별하게 희생된 것임을 전하고 있다.

허씨는 “4·3 시기 희생된 아동 중 생존자들은 유년기의 기억마저 삭제된 이중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다”면서 “생존자  가운데 미등록된 후유장애자들에 대한 공적 배려나 희생당한 아동들을 위한 추모의 장이라도 마련됐으면 한다”는 뜻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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