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만에 희생자 5구 발굴…암매장 증언 59년만에 ‘사실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파헤쳐지고 결국엔 도민들의 4·3학살매장터로 사용됐던 제주시 화북동 별도봉 일본군 진지동굴.

4·3 당시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5구가 진지동굴 내부에 나란히 누워있는 발굴현장이 23일 오전 10시 공개됐다. 수십여명의 4·3희생자가 학살되고 암매장됐다는 증언이 59년만에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현장공개에서는 남자로 추정되는 유해 5구가 원형 그대로 나란히 누운 채 모습을 드러냈다. 유해 주변에서는 M-1완탄과 탄두, 탄피, 동전, 단추 등 유류품도 확인됐다.

유해가 특별한 손상 없이 고스란히 보존된 데는 진지동굴 상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사체가 자연스레 보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라는 점은 물론 수분이 잘 빠지는 토양의 특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유해의 손상을 덜 가져온 것으로 판단된다.

4·3유해발굴단은 “유골이 반듯한 모습으로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누군가 시신을 옮겨놓은 것 같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날 공개된 유해 5구는 1948년 10월말부터 11월초 자행된 제9연대 숙청사건에서 희생된 군인일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되는 등 신원에 대해서는 향후 유전자 감식 등이 이뤄지면서 차차 밝혀질 전망이다.

이처럼 4·3유해발굴사업 시작 보름만에 희생자 유해 5구가 발굴되면서 별도봉 진지동굴 일대 60여명의 시신이 묻혀있다는 증언이 설득력을 얻는 등 학살 매장터로 사용됐다는 별도봉 진지동굴의 잔혹한 과거도 서서히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4·3당시 별도봉 일본군 진지동굴은 1948년 ‘9연대 숙청사건’때 제주출신 군을 포함해 수십명의 장병이 총살로 숙청된 장소로 추정되고 있다.
 
또 주민증언에 따르면 일대 밭에 군복입은 시신들이 쌓여 심한 악취를 풍기면서 동네사람들이 흙을 덮었다는 증언도 있는 등 정확한 희생자수는 파악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체가 학살되고 암매장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사라봉, 별도봉 일본군 진지동굴은 1945년 4월 항복 직전까지 도민들이 끌려가 노역으로 구축된 아픈 역사이자 또다시 도민들의 사형장으로 활용됐다는 데 역사의 비애가 묻어나는 장소다.

4·3유해발굴사업단은 “3월까지 진지동굴 일대 유해발굴이 이뤄지면 머지않아 희생자수 등도 파악될 것”이라고 밝혔다.

발굴된 4·3유해는 제주대 의과대 법의학 교실에 마련된 보관장에 안치, 체질인류학적 분석, 법의학적 감식, 유전자 감식 등을 실시해 신원 및 가족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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