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은행은 앞으로 부실이 없는 ‘클린 뱅크’로 변화를 꾀하지 않는한 금융지주회사에 소속되는 수순을 밟는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그동안 중앙종금과의 합병절차에 꾀나 많은 기대를 했던 이들에게 두 회사의 합병 무산 소식은 그 자체보다도 제주은행이 생존할 수 있느냐는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제주은행의 생존 유무는 제주경제의 앞날과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종금과의 합병마저 무산된 상황에서 제주은행이 제대로 된 자구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동안 제주은행을 곁에서 지탱하며 지켜준 도민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제주경제에도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올 수 있다.

게다가 깨질 약속을 왜 했느냐에 대한 지적도 피할 수 없다.비록 양해각서(MOU)가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고 하지만 고객들에게 약속한 사항을 어겼다는 점에서 은행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합병 추진 및 백지화

제주은행은 지난달 8일 중앙종금과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전문투자은행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도민들에게 약속했다.제주은행은 지역내에 안정적인 소매금융 영업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강점을 내세웠으며,반면 중앙종금은 기업금융에 강한 점을 앞세웠다.

당시 두 회사가 합병에 따른 양해각서를 교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권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금융권 구조조정에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영업기반이 틀린 두 회사가 합병의 뜻을 비친 것은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두 회사의 합병 이면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당시 두 회사는 합병에 따른 강점만을 내세웠지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제주은행은 중앙종금과 합병될 경우 자산규모가 1조5000억원에서 4조3000억원으로 늘어나며,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10.75%로 높아진다며 홍보했다.

이는 합병이 깨지면서 모두가 허상으로 밝혀졌다.두 회사는 어려움의 타개방안으로 합병이라는 장밋빛 환상만 발표했을 뿐,그 속에 감춰진 부실은 감추고 출발했다.두 회사가 합병추진위원회를 구성,회담이 오간지 불과 10여일만에 종금사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다.여기에다 금융감독원이 종금사에 대한 대대적인 자산실사를 실시한 결과 중앙종금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8%에 밑도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합병추진은 원점으로 돌아갔다.제주은행은 뒤늦게야 잃는 것이 많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어쨌든 두 회사에서 머리를 맞댄 40여일간의 합병추진은 ‘부실 대 부실’의 합병추진이라는 오명만 남겼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의 진로

제주은행은 자구계획을 통해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거나,그렇지 못할 경우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되는 길만 남았다.

독자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부실규모를 완전 없애야 한다.부실이 없는 완전 ‘클린 은행’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1000억원이상의 증자가 필요하다.

제주은행은 클린화를 전제로 일본·미국·유럽 등의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다.외자유치가 여의치 않다면 국내에서 증자를 통한 자본금 확대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제주은행이 뜻한대로 일이 추진된다면 독자생존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금융권 주위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내리고 있다.제주은행이 지난해 대규모 증자를 달성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음에도 불구,여전히 부실여신이 1000억원을 넘는등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합병이 깨지면서 시장의 신뢰성을 잃은 것도 외자유치를 어렵게 할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제주은행은 오는 9월말까지는 자구계획을 마련해야 한다.자구계획에 대한 평가는 10월중 있게 된다.정부가 제주은행의 자구계획을 인정하지 않으면,제주은행은 정부가 추진중인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되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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