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가 넘도록 역사에 파묻혀 지내야 했던 제주4·3이 질곡의 세월을 지나, 아픔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나가고 있다. 빨갱이로 몰려 불법 구금된 사형수와 수형인들도 이젠 정부가 인정한 희생자다. 이같은 4·3의 큰 걸음에 누구보다 열정을 보인 3인방이 있다. 지난 2000년 8월 제주4·3위원회(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족된 후 희생자심사소위가 구성돼 1만4373명의 신고자에 대해 철저한 작업을 벌여온 이들에게  색깔논쟁 등 온갖 어려움이 없었을까, 그래도 이들은 진실규명을 위해 했을 뿐이라며 말을 아낀다.

   
 
   
 
“방대한 기록 정밀조사‘수형인’ 희생자 인정”

△박재승 희생자심사소위 위원장
지난달 14일 오랜시간 도민이 기다려온 정부의 불법 군법회의 불인정, 사형무기수 희생자 인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박재승 위원장은 누구나 납득할 법률적 근거를 제시해 왔다.

무엇보다 논란이 돼 온 군법회의 명령서의 부당성을 증명해낸 박 위원장은 “군법회의 명령서가 존재했기 때문에 재판에 의해 사형무기를 받은 수형자들을 어떻게 희생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위원회는 상당기간 방대한 기록을 정밀조사하고 관계기관의 사실조회, 수형인으로 돼 있는 수십명에 대한 조사와 군법회의를 진행한 지휘관의 진술, 취조경찰·호송경찰 등 접근가능한 모든 자료를 조사했다”고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그 결과 군법회의는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점은 4·3진상보고서에도 동일하게 정리됐다”며 “재판절차는 엄격히 지켜져야 하고 재판절차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면 재판의 부존재나 무효라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독일이 지난 1998년 나치의 불법판결의 파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포괄적 불법청산방식을 도입해 과거사를 해결하고 있는데 4·3특별법 방식은 특별법에 의한 개별심사 방식으로 독일보다는 직접적이지 못하지만 희생자심사라는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같은 효과를 얻어냈다”며 “우회적이긴 하지만 수형인의 희생자인정은 법률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민주화과정에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다른 과거사위원회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4·3위원회에 대해선 위원들의 바른 역사의식과 제주도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가능했다”며 “앞으로 4·3특별법의 정신처럼 제주도가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60년전 통일정부 염원 현대사  현재  진행형”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민주언론의 파수꾼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4·3당시 기록물을 어렵게 찾아 확인하려고 보면 어김없이 날렵한 뭔가로 잘려나간 것들을 무수히 경험했다”는 말로 그간의 소회를 전했다.
 
김삼웅 관장은 “당시 제주도민들의 통일정부 수립 요구는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우리의 염원이란 사실은 4·3이 제주만이 아닌, 한국현대사의 현재진행형임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모순이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에 기인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김 관장은 “4·3에 대해 오로지 남로당의 무장반란으로 왜곡된 기록만 존재한다면 희생자나 유족들의 억울한 역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소명을 갖고 활동했다”고 털어놨다.
김 관장은 “아직도 일본은 강제위안부에 대해 조선의 창녀로 역사왜곡을 일삼는데 다른 나라의 잘못에 대해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역사의식엔 이중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며 “이것이 4·3을 비롯해 과거사위원회 활동이 중요한 이유다”고 4·3위원회의 의미에 대해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임하고 있어 제주4·3평화공원 조성에 대해 묻자 쓴소리가 이어진다.
“4·3평화공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데 상징물인 모녀상만 봐도 4·3의 성격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달라지지 않고 있다”며 “공원내 기념관에 대해서도 이를테면 파리의 바스티유감옥처럼 과거와 현재를 이을 수 있도록, 후대들이 4·3을 어떻게 추모하고 무엇을 기억할지, 제주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하루빨리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비극의‘축소판’전국화 방안 고민을”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한국현대사 연구의 기반임에도 학계에서 금기시됐던 해방후부터 분단의 시기를 연구해 학계에선 처음으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를 발표한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위원회에서 4·3에 대한 역사적 접근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4·3유적지나 유적지 발굴작업을 할 때면 항상 따라오던 경찰의 검은색 지프차가 기억난다”고 말문을 연 서 교수는 4·3을 앞으로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4·3은 한국비극의 축소판이다. 무려 1년반 동안 수만명의 민간인들이 해방정국의 많은 문제점을 집단행동을 통해 알려낸 항쟁이다. 그만큼 의미가 깊지만 전국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자칫 제주만의 기념활동으로 축소될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이어 “국내 여러 민주화운동들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4·3의 성격이나 규모로 볼 때 한국의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는 대안이 최대 숙제”라고 전했다.
특히 서 교수는 “그렇기에 4·3평화공원과 기념관 사업, 북촌 등 유적지 조성사업이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최근 너무 관료적으로 흐른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지속성이 중요한 4·3사업소장이 수시로 바뀌고 평화공원도 제주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건축미가 필요한데 시간에 쫓겨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서 교수는 “유물수집 작업이나 영상물 등 수차례 문제제기를 했는데도 나아지지 않고 있어 평화공원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곳만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교과서 기술문제만이 아닌 후대들이 교육장소로 찾는 관광명소이자 역사기억장소로 추진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변경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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