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근·전업주부·작가

# 상황 1.

한 남자가 있습니다. 착하고 부지런한 한 여자의 남편이자 새처럼 지저귀는 어린 남매의 아빠입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입니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온 내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OO이가 그러는데 자기네 엄마 집 나갔대!’ OO이 친구인 내 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부부싸움을 했나 보군!’ 그것은 큰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늘 소소한 다툼 속에서 살아가니까요.

그런데 곧 돌아올 줄 알았던 OO이 엄마를 더 이상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아니 몇 달이 지나서 한번 다녀가기는 했다고 합니다. 짐과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즈음에 대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OO이 아빠가 하는 일이라곤 늘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노름하는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부부간에 분란도 많았고요. 같은 이유로 5년, 10년을 싸우다보니 OO이 엄마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 상황 2.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초여름입니다. 바닷가 해안도로에 경운기며 트럭, 봉고차가 수십 대 줄지어 서있습니다. 그 자동차 숫자만큼의 남자들이 그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는 걸까?’궁금해서 지켜보았습니다. 저 멀리 갯바위 너머로, 그 위로 해녀들이 보입니다. 척 보기에도 2-30kg은 돼 보이는 해산물을 짊어지고 나옵니다.

고무 잠수복을 입은 채 울퉁불퉁한 갯바위 위를 걸어 나옵니다. 그런데 해산물을 받아들기 위해서 마중 나가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몇 시간 동안이나 고된 물질을 하고 나오는 아내와 그늘에 앉아서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남편. 참으로 기이한 풍경입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저마다의 풍습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런 풍경은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주남자랑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던 여학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또 ‘제주사람들 어때요?’라고 인터뷰하던 텔레비전방송국의 프로그램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한 관광객이 무뚝뚝하다고 대답했는데 그게 MC의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남녀 MC가 주고받듯이 이야기합니다. ‘사실 제주사람들의 속마음은 그렇지가 않은데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면 제주인의 속마음을 관광객이 헤아리라는 말입니까?
애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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