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물풀의 융단"(생태계.jpg)


◀ 지금 역고못에 가면 물풀의 향연과 함께 푸릇푸릇 갖가지 녹색의 변주를
감상할 수 있다.


◈역고못·걸월이못·사운다리못(한림읍 상대리)

 국도 16호선을 타고 한림읍 상대리 역고못으로 간다.한립읍 읍사무소에서
성이시돌농촌산업협회 쪽으로 10분 가까이 달렸을까.다시,동쪽으로 차 하나
겨우 빠져 나감직한 비포장길을 따라 10분 남짓 더 들어갔다.

 구불구불 황토길,들녘은 지금 온통 푸릇푸릇 갖가지 녹색의 변주로 연출
되고 있다.

 솔잎색,연두색,초록색,갈매색…,이 들녘의 대표 수종인 소나무는 어두운 녹
색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생각까지 덜컹거린 탓에 더이상 적당한 표현을 찾
지 못했다.길 안내를 맡은 김중서 상대리 노인회장(73)은 “이런 길은 사륜
구동이 아니면 차 망가질 각오를 하고 들어와야 한다”고 거들었다.

 그는 또 “역고못은 인근에 밭을 둔 사람들만 겨우 찾을 뿐 평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아마 한림읍 관내의 습지가운데 가장
자연적일 것”이라고 거들었다.

 차에서 내려 다시 2개의 밭과 돌담을 건넜을까,햇빛으로 어리어리한 눈은
비로소 광활한 물풀의 융단을 발견한다.

 해발 235m에 자리잡은 자연못인 역고못은 배후습지까지 포함하면 400평
가량 될 듯 싶다.

 이곳에는 지금 키가 어금지금한 물풀들이 자라고 있다.사초과의 큰골·송
이고랭이·매자기·세대가리·파대가리·방동사니를 비롯 여뀌,마디풀,논뚝
외풀,네가래,어리연꽃,좀어리연꽃,눈여뀌바늘,돌콩,비수리,차풀,마름,두메꽃탑,
올챙이솔,골풀,붕어마름,가래,말,닭의장풀,사마귀풀,가막사리,미국가막사리,택
사,겨이삭,수크렁….

 물풀의 왕은 침수식물인 붕어마름(붕어마름과)과 말(가래과)이다.못 전체
적으로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또 수심이 낮은 쪽은 마름·어리연꽃·송이고랭이 등이 차지하고 있다.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는 하늘을 비추며 반짝거리기 시작했다.그곳에는 송
장헤엄치게와 물자라·미꾸리·개구리 등의 수생동물이 살고 있다.

 취재팀은 꿈결처럼 부드러운 물풀의 융단을 감아 가슴에 꼭 품고 걸월이
못으로 발길을 돌렸다.

 걸월이못은 자연적인 못으로서 해발 255m,국도 16호선 옆 상대리와 금악
리 경계지경에 자리잡고 있다.깊이는 1∼1.2m,크기는 250평가량된다.

 걸월이못은 한자말로‘거월지(巨月池)’라고 표현한다.초승달의 뿔모양을
하고 있는 돌개기못(月角池)와 달리 반달모양을 취하고 있다.

 걸월이못은 또 바닥이 암반이기 때문에 일단 고인 물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예전에는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됐다.

 이곳에는 사초과의 송이고랭이가 우점종이다.송이고랭이와 유사한 세모고
랭이도 눈에 들어온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 펴낸 ‘제주도의 습지3’을 보면 ‘한 개체가 모여
줄기가 하나의 뿌리에서 퍼져 있는 것이 송이고랭이,반면 세모고랭이는 뿌
리가 넓게 퍼져서 그 위로 줄기가 각자 각자 올라오는 것’이라며 송이고랭
이와 세모고랭이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구분짓고 있다.

 못 중간 암반위에는 찔레·보리수 등이 있고 고마리·여뀌·미꾸리낚시·
차풀·좀어리연꽃·가래·마름·부들·네가래·붕어마름·택사·물닭개비·
골풀·비녀골풀·가막사리·빗자루국화·겨이삭·돌피·큰고랭이·알방동사
니 등도 서식하고 있다.

 또 수생식물로는 송장헤엄치게(송장헤엄치게과)와 게아재비(장군애비과),
물장군(물장군과),물달팽이(물달팽이과),개구리(개구리과) 등이 있다.

 이 마을 장석재씨(50)는 “40여년전 상대리출신 장이봉씨가 한립읍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곳에다 붕어를 풀어놓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노인회장 김
중서씨는 “60년대 초반 제주시에서 살다 제사보러 이곳에 왔다가 걸월이못
에서 어른 손으로 한뼘 반가량의 붕어를 잡아 제주시에 가 살아있는 상태로
팔았더니 1000원을 주더라”며 “씨알이 무척 큰데다 당시 쌀 한말값이 300
원 했던 것을 감안하면 몹시 귀하게 쳐 준 것”이라고 회고했다.

 사운다리못은 못 형태가 우마급수장과 음용수통으로 구분돼 있다.그러나
상수도가 보급됨에 따라 쓰임새를 잃어 지금은 인근 쪽파·마늘밭에 가끔
물을 댈 뿐이다.

 주요 습지식물로는 여뀌·기생여뀌·개여뀌·흰꽃여뀌·며느리배꼽·자귀
풀·사마귀풀·가래·큰참새피·큰골 등이 있다.

 인근에서 650평가량 되는 시설재배 농사를 짓는 양영철 상대리장(36)은
“여름이면 개구리 소리가 시끄럽고 비닐하우스에 가끔 물베염이 나타나 곤
욕을 치른다.게다가 땅꾼이 다닐만큼 아직도 이곳은 살아있는 못”이라고
말했다.

 사운다리못의 넓이는 약 80평가량되며 15년전 도로확장과 함께 20평 가량
이 매립됐다.

 이와함께 농로쪽은 콘크리트로 경계석을 했다.콘크리트 받침대에 자연석
을 세운 인위적인 조형물이 보기좋게 들어섰다.

 습지가 인공의 콘크리트로 차단되는데서 느껴지는 망연자실함은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할까.잘 다듬어진 인위적인 조형물이 습지의 끈적거림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콘크리트는 삶의 철조망이나 다름없다.공생의 틀을 깨고 만다.

 보기좋은 것과 편안함만 쫓다보면 결국 풍경에 상처를 내고 지역주민들과
사운다리못이 함께 한 세월의 흔적마저 지워버릴 것이다.<취재=좌승훈·좌
용철 기자·사진=김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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