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계엄령의 불법여부와 관련한 재판이 지난주 제주지방법원에서 원고인 이승만 전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의 전부패소로, 따라서 제민일보의 승소로 귀결됐다. 재판부의 판결은 특히 4·3 당시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 이 있었음을 사법적 판단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군· 경 토벌대에 의하여 다수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되었다는 보도와 관련, 계엄령을 선포한 시기에 무장대와 직접 관련이 없는 많은 주민들이 재판절차도 없이 살상당하는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물론 이번 판결은 적극적으로 소송상 청구를 해야 할 당사자인 4·3 피해자쪽이 오히려 피고 입장에 선 상태에서 선고되었고, 1심에 불과할 뿐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정부와 국회에 대하여 4·3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개인 보상의 단초를 제공하는 뜻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먼저, 공권력에 의한 국내 양민학살과 관련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정부에 도덕적 부담감을 안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정부의 솔직한 사과와 반성 및 배상 또는 보상을 촉구하는 셈이다. 양민학살이라는 인격의 존엄을 철저히 침해, 인간으로서의 자부심과 가치를 짓밟고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원천적으로 유린한 만행을 저지른 데 대한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심 시효만료를 이유로 국가배상에 안이한 자세를 취해온 정부가 적극적인 후속조처를 취하는데 인색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해 추미애의원이 제주4·3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전위적으로 '선언적 사과'를 해야 한다고 국회차원의 대정부 권고를 했음에도 정부가 이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한 무언의 사법적 질책인 셈이다.

아울러, 헌법의 근간(根幹) 가치인 기본적 인권이 침해됐으므로 합리적인 기간 내에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필요한 입법을 해야 한다는 국회에 대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걸림돌인 시간의 경과에 따른 배상청구권의 소멸이라는 장벽을 근원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이른바 4· 3을 비롯한 '학살양민보상법'이 절실하다는 뜻으로 새겨들을 수 있다.

최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직접 항거하다 피해를 본 사람들로 하여금 정부의 보상을 받게 만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은 학살양민보상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반사적으로 성실한 학살양민문제 처리를 게을리 해온 국가의 잘못을 새삼스레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입법부작위(立法不作爲)이기도 하다.

인권이란 천부불가양(天賦不可讓)의 권리는 인간이기때문에 부여된 자연권이지 국가가 선심으로 부여한 시혜가 아니다. 국가는 개념상으로는 하나의 지배단체이지만 이념상으로는 하나의 봉사단체이다. 국가의 지배 그 자체는 악이다. 그러나, 국가는 악을 위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자는 결코 악을 행할 수 없다. 인간과 시민생활에 봉사하기 위해 국가는 지배와 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그것은 필요악이다. 필요악이기 때문에 최소한에 머물도록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국가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법적 판단의 바탕은 바로 이것을 성찰하는 국가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국민의 정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4·3 반세기가 지났어도 과거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게 일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러나, 국가로서의 역사적 책임은 시공을 넘어서 명료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런 성찰이 결여될 때 제주지방법원 4·3판결은 '국가 사죄까지 담은' 또 다른 판결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 것이다.<양석완·제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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