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오른 김치를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못 먹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볼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믿기지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재일동포 가정보다 민족심이 비교적 강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주변에서 보면 통명(일본이름)도 없이 당당하게 본명(한국이름)으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민족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직접 ‘번역’해서 읽어주는 동화나 불러주는 동요를 통해 나름대로 한국문화를 익혀온 나였다. 그러나 ‘한국’은 늘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친근감은커녕 필요성을 느낄 수도 없었다.

이런 내게 한국어가 다가왔다. 한국어를 만나 대학에서 전공하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에서 공부할 정도로 열중하게 됐다. 한국어에 열중하게 된 계기를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외할아버지 이야기와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 때 외할아버지는 70대 후반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암 말기에 병상에서 자꾸 한국어로 헛소리를 하곤 했다. 나와는 항상 일본어로 대화하던 외할아버지가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 50년 넘게 쓰던 일본어를 잊어버린채 한국어로, 그것도 몇 십 년 동안 못 갔던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여름방학을 이용, 캐나다로 단기어학연수를 떠나게 됐다. 거기서 또 다른 충격을 받게 된다. 이때까지 생각조차 못했던 가치관을 접한 것이다.

캐나다에 도착한 첫날밤, 호스트 어머니와 주고받은 얘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젊었을 때 독일에서 캐나다로 오셨어. 남편은 영국출신이고,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나와 남편이 캐나다에서 만나 지금 이렇게 같이 사는 거야.”

다민족국가인 캐나다에서의 경험은 내게 ‘재일한국인’이라는 것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모처럼 주어진 두 개의 백그라운드를 모르고서는 주어진 인생의 반도 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시의 개인적으로는 큰 ‘발견’이었다.

캐나다에서 귀국하기가 무섭게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찾아왔다. 제주공항에 내린 순간 남국 특유의 습기와 강한 바람이 온몸에 느껴졌다.
‘(오사카를 떠난) 비행기는 금방 착륙했는데 여기는 오사카보다 훨씬 무덥네. 한국은 동남아가 아닐텐데…’

이것이 그때 느낌이었다. 감동한 나머지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재일동포 2세인 부모님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일본에 오시기 전까지 계셨다고 하는 시골집에도 가게 됐다. 거기서 외할아버지를 안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외할아버지가 어떤 소년시대를 보냈는지 궁금했고, 동시에 옆에서 지켜본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스무 살도 채 안된 소년이 영문도 모른 채 이국에 가서 어렵사리 살림을 꾸리면서 일본사회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 하지만 한 번도 고향의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은 내게는 그 어떤 소설책보다 훨씬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고향 제주에서의 경험. 그 때 언어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돼 아쉬웠던 경험이 결국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후,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오고 싶어했던 제주도를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제주도에 계시는 친척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제서야 두개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인생의 즐거움을 실감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을 통해서 인생을 두 배 즐길 수 있는 법을 외할아버지가 가시는 길에 선물을 해 준 셈이다.

일본에 건너온 1세 세대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동시대에 엿볼 수 있었던 나와 같은 3세는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세대는 앞으로 4세, 5세 등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messenger)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에게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잘 전달해야 된다고 절실히 느낀다. 재일동포로 태어난 인생을 두, 세배로 즐길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본인에 달려있으니까.<이양민 도민기자·재일동포·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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