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나눔의 정신마저 흐려놓았나. 최근 관덕정에서 열린‘김만덕의 나눔 쌀 천섬 쌓기 행사’가 말썽이다.

김만덕기념사업회가 제주 백성들을 구휼했던 김만덕(1739∼1812년)의 정신을 잇기 위해 도
내외 도민들에게 거둔 쌀 1300섬을 불우 이웃에게 전하는 행사였다.

기념사업회가 불우 이웃에 쌀을 전달하는 과정이 모처럼 뜻깊은 행사에 찬물을 끼얹었다.

기념사업회는 공동모금회를 통해 도내 사회복지시설 60곳의 종사자들을 행사장으로 집결시
켰다. 

문제는 시설 관계자들이 딸을 배급받기 위해 때약볕에서 몇 시간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기념사업회가  축하공연 뒤로 쌀 배포를 늦췄기 때문이다.

시설 종사자들이 행사장을 찾은 시간을 오후 3시, 축하공연이 끝날 시각이 5시30분 이후였
기에 시설 종사자들은 3시간 가까이 행사장에 머물러야 했다.

이날 쌀 배급은 5시30여 분부터 시작돼 오후8시가 되서야 끝났다. 이 와중에 일부 시설 종
사자들은 5시간 넘게 행사장에 머무는 등 많은 불편을 겪었다.

사회복지의 한 종사자는 “나눔 행사가 배급 행사로 둔갑했다”면서 “시혜의 대상자인 소외계층이 외려 행사장의 들러리가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시설 종사자는   “모처럼 뜻깊은 행사이니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 기쁜 마음이어야 하는데 이날 행사는 시설종사자들로 하여금 웃음보다는 서러움을 안겨 행사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고 말했다.

237년 전 만덕 할망은 평생을  모은 재산을 내놓아 곡물을  사들여 제주 사람들을 구했다.

이때 만덕 할망은 직접 관덕정에 가마솥을 걸어 죽을 쑤어 굶주림에 지친 제주 백성을 먹여
살렸다.

기념사업회는 바로 만덕 할망의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잇자고 이 행사를 마련한 것이지 않은가.
 
기념사업회가 만덕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자 했다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쌀 배급에 앞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옳았다.

가마솥을 걸어 죽을 쑤어 굶주린 제주사람을 살려낸 것만 재현했어도 이번 행사는 빛이 났
지 않았을까. 

배려 없는 나눔 행사, 요란한 이벤트에  소외계층은 더욱 서럽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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