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눔, 헌혈

   
 
  ▲ 대한적십자사 제주도혈액원에서 학생들이 헌혈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조성익 기자>  
 
지난해 말 일이다.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누군가의 손을 붙들고 제주 헌혈의 집을 찾았다.

백혈병에 걸린 오빠를 위해 혈소판 헌혈 대상자를 물색해 직접 헌혈의 집에 데리고 온 것이다. 그렇게 꼬박 2주일여를 혈소판 헌혈 대상자와 헌혈의 집을 찾았던 그녀는 지금 혼자서 헌혈의 집을 찾는다. 오빠는 비롯 세상을 떠났지만 오빠를 위해 애써준 사람들에 대한 아주 작은 보답이라는 생각에서다.

31일 찾아간 대한적십자사 제주도 혈액원은 올 여름 ‘빈혈’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바로 전주까지만 해도 대대적인 헌혈캠페인으로 혈액원이 텅 비다시피 했었다. 방학기간만 되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혈액수급 비상 사태 때문이다.

지난해 제주지역 헌혈 인구는 2만9769명으로 6년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2000년 3만8830명으로 도내 전체인구의 7.4%가 헌혈을 실천했으며 △2001년(3만6962명) △2002년(3만6461명) △2003년(3만7943명) △2004년(3만5778명) △2005년(3만1698명)으로 해마다 3만명 이상을 돌파했다.

인구대비 헌혈비율 5.5%. 여기에는 헌혈부적격자 증가, 말라리아 위험지역 확대, 단체헌혈 감소, 고령화 등이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31일 현재 도내 헌혈자수는 1만8119명으로 이 상태대로라면 올해 헌혈자 수가 3만명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거란 조심스런 기대도 나오고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헌혈의 집을 통한 헌혈이 전체 27.6%나 된다는 것. 헌혈증을 한 장 한 장 모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다회헌혈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헌혈의 집 헌혈 비중이 높은 것은 이곳에서만 성분 헌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헌혈의 집 이용자중 절반 이상은 다회 헌혈자다.

혈액의 집 입구에서 20대 대학생과 맞닥뜨렸다. 인터뷰 요청에 별것도 아니라며 멋쩍은 듯 머리만 긁적이다 자리를 뜬다.

“시작이 어렵지 습관이 되고 나면 쉽고도 기분 좋은 일”이란 말을 남긴다.

예전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는 어느 부분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박혀 헌혈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헌혈 기피현상은 남아있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기미가 보인다. 주말이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족 모두가 헌혈의 집을 찾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고 했다.

수혈자는 물론 헌혈자에 대한 건강관리가 모두 이뤄진다는 점은 헌혈의 가장 큰 장점. 헌혈을 희망하며 10차례 가까이 헌혈의 집을 찾았던 한 여고생은 계속된 저비중 판정으로 크게 실망했지만 꾸준한 건강상담을 통해 지금은 다회헌혈자에 이름을 올렸다.

‘피말랐던’여름을 겨우 넘겼지만 아직 겨울이 남아있다.

도내에서만 하루 평균 70~80유니트의 혈액이 공급되고 있지만 자발적인 헌혈로 이를 다 충당할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계속해서 헌혈캠페인이나 단체 헌혈에 의존해야 한다는 현실이 더 그렇다.

제주혈액원 강용길 기획팀장은 “헌혈캠페인이나 영화관람권 등 이벤트 유무에 따라 헌혈량이 큰 차이를 보인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손쉽게 나눌 수 있는 것으로 헌혈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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