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는 건드리는게 아니래 그냥 짐승이려니 하고 내버려두면…영어일기를 쓰고 학년회장을 한다는데 왜 걱정이 되는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초등학교 오륙학년쯤 돼 보이는, 희멀건 피부의 아이가 벌거벗은 채 연신 사과를 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치솟았던 화가 사라지면서 헛웃음이 납니다. 그래 관대하게 용서를 해주  었습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찾는데   웬 불한당(?)같은 녀석이 내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어보았  습니다. ‘그거 네 수건이니?’ 그때서야 제 잘못을 깨달았는지 사과를 합니다.

  그 아이 얼굴 위로 초등학교 4학년과 3학년인 친구의 두 아들이 겹쳐집니다. 멀리 서울서   제주까지 놀러왔다고 식사를 대접하러 갔을 때입니다. 잘 아는 식당주인이 귀한 손님에게  만 주는 것이라며 삶은 말 곱창을 한 접시 내주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와 한 점  씩 먹었을 뿐인데 접시가 텅 비어버렸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둘러보았더니 3학년아이가   ‘난 두개 먹었는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향이도 두 개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4학년인 아이가 씩 웃으면서 가소롭다는 듯이 말합니다. ‘난 다섯 개 먹었는데.’

  제 부모와 아빠의 친구부부가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제 욕심만 채운 것입니다. 그 아이의   무례함은 그 뒤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회를 먹을 때도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도 남이 하나라도 더 먹을까 싶은지 허겁지겁 삼켜버립니다. 고기를 씹지도 않고 삼키면서 야채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돈가스를 먹으면서도 야채샐러드는 그냥 남깁니다. 한번은 김치볶음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는 아이가 숟가락을 들지 않습니다. 제   아빠가 턱밑에 숟가락을 들이대고 있으니 오만상을 짓습니다.

  여행 중에 걸을 일이 생기면 투덜거립니다. 먹는 것과는 달리 걷는 것은 젬병입니다. 이  동 중에는 느물느물 대면서 두 동생을 귀찮게 합니다. 그래 툭하면 동생들을 화나게 하고, 울립니다. 그런 아이를 두고 친구가 말합니다. ‘사춘기에는 건드리는 게 아니래. 그냥 짐승이려니 하고 내버려두면 삼년 뒤쯤에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대’ 아이가 영어일기를 쓰고, 학년회장을 한다면서 친구의 아내가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걱정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성근•전업주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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