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서울에서는 국회부의장이 자택을 점거한 일련의 의원들에 의해 등원의 발목이 묶였다 하고, 엎어지면 코 닿는 우리 동네에서는 시의원이 시의회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한다. 중앙 정치권에서는 각 당들이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술수놀음에 빠져 있는데, 우리의 지역정치권은 자리싸움으로 덕지덕지 얼룩이 졌다. 너무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중앙의 폭력은 교묘하게 온건한 외양을 덮어쓰고 있음에 비해 우리 동네는 투박한 주먹질 수준이라는 것이고, 중앙의 술수가 음흉한 꼬리를 감추는 거래 수준인데 비해 우리 지역은 투전판 수준이라는 것이다. 권모술수에서는 역시 중앙이 한 수 위라고 해야 하나? 지역정치판을 순진하다고, 아니면 유치하다고 해야 하나?늘 거기서 거기인 행태를 보면서, 정치권이야말로 참으로 무풍지대라는 생각이 든다. 정보화사회라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도무지 변화할 줄 모르는 정치판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정보사회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이론가들의 저술에도 정치 영역에 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들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차원에서는 숱한 규정들을 하고 있는데, 정치적 구조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언급 외에는 체계적 논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 중 몇몇은 노골적으로 정치적 논의를 회피하는 이유를 고백하기도 한다. 정치가 탈산업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이 될 것이기 때문에, 유쾌하기 않기 때문에, 사회적 변화를 기존의 정치제도로는 수용하기 어려워서 정치적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기 때문에 등등이 그 이유란다. 그 이유들이 무엇이건 간에 대체로 밝은 전망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가 드러내는 어두운 면은 사실 정보사회로의 변화 이전에 이미 만연된 것이다. 시장자본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적인 이익추구 정신이 정치영역에 침투 군림한지 이미 오래다. 달리 말하면 정치권은 이익을 위한 격렬한 싸움판이 되면서 공공선의 선양이라는 과제는 권력투쟁을 눈가림하고 정당화하는 떡고물이 된 셈이다.

우리보다 훨씬 정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전망이 이 지경이라면 우리는 참으로 암울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 정치의 변화는 경제 사회적 변화보다 느리게 나타나는데, 아직 우리에게는 민주적 정치의식조차 확고하게 자리잡기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정치권에서 중앙과 지역을 가릴 것 없이 꼭 닮은꼴로 저질러지는 폭력과 비리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요인에 귀착되는 셈이다. 하나는 자본주의사회의 정치가 이익추구를 위해 사사화(私事化)되었다는 일반적인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정치의식의 결여라는 한국 특유의 요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더욱 암울한 전망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가? 더욱이 부정적 현상은 정치 외적 영역에서도 상호침투되고 전이되어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 각계에서 벌어지는 이익을 위한 미친듯한 투쟁의 양상은 정치권과 너무 닮아 있지 않은가. 이 닮은 꼴 구조를 변화시킬 묘책은 없는가? 있다. 만연된 병든 구조가 스스로 동맥경화현상을 드러낼 때 가차없이 달려들어 기존의 구조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이다. 이 번에 불거진 정치권의 꼴볼견은 스스로 동맥경화증상을 노출시킨 셈인데, 이런 때에 그 병증에 철퇴를 가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시민단체협의회의 항의시위는 변화를 위한 요동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기존의 부정적 관행을 무너지게 할 정도로 폭발적 요동을 일으키느냐이다. 항의 수준의 질에 대해 고민할 때이다.<하순애·전 제주문화포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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