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두 정상이 만나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후 냉전의 고도로 남아있던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넘실대고 있다. 6·15 선언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후속 조치들이 착실히 이뤄지고 있다. 장관급 회담이 성사되고 여기서 8·15 남북화해주간을 공동선포하기로 합의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통일의 힘찬 기적을 울리며 철마가 달릴 날도 멀지 않았다. 여러 민간 부문에서 상호 교류와 협력 방안들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음을 본다. 오는 광복절엔 부분적이나마 이산가족의 첫 만남이 이뤄지고, 장기수 송환이 추진되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남북 선수단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당당히 입장해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통일 의지를 널리 과시할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기막힌 분단의 아픔을 절절히 맛보았다. 꽃다운 나이에 생이별을 해야 했던 아내와 남편을 몽매에도 그리다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목이 매인 칠순의 실향민들, 전쟁이 나자 서로 다른 이념에 따라 형은 의용군에 동생은 국군에 입대하여 형제간에 총질을 했던 분단 조국의 슬픈 미아들, 사상과 신념에 따라 제 발로 걸어 넘어간 사실이 탄로 날까 봐 숨죽여 살아 온 '납북자'가족의 남모를 고통의 세월들은 차라리 눈물 없이는 볼 수 도 들을 수도 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또 한 켠에서는 한반도에 흐르는 이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르고 애써 부정하는 반통일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6·15 선언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호도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해 온 야당 총재와 일부 의원들의 지각없는 행태와 저급한 역사인식, 이에 대한 북쪽의 원색적인 비방,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한 일부 극우 언론의 보도가 이런 것들에 속한다.

이 가운데 단연 으뜸을 달리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극우 언론의 반통일적 작태이다. 그 동안 극우적인 수구 기득권 세력의 충실한 대변지 노릇을 자처해 온 조선일보의 보수 논객들은 남북 정상회담과 그 후에 전개되는 일련의 남북 관계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분열과 적대를 청산하려는 반세기만의 민족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들의 논조는 이미 언론의 금도를 벗어나 위험천만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월간조선의 조 아무개 편집장은 "바보나 위선자가 아닌 한 누구도 통일은 국군이 평양의 주석궁에 탱크를 진주시킬 때 완성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고 강변했다. 이런 사람이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은 정상회담이 달가울 리 없다. 지금이 입버릇처럼 북진통일을 되뇌던 이승만 시대인가. 시대착오적 망발도 유분수다. 빗나간 한 언론인의 '호국충정'에 그만 소름이 돋는다. 건전한 통일관을 가진 국민 대다수를 바보나 위선자로 매도하면서, 바보나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면 그의 무력북진통일론을 지지해라는 오만방자한 언론폭력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들은 남북간에 군사적 대결이 종식되고 평화와 화해가 정착되어 통일의 시대가 열리는 걸 바라지 않는다. 역대 독재정권이 남북 긴장 상태를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의 볼모로 삼아 모든 자주·평화통일론을 엄중히 봉쇄해 왔고, 이러한 부조리한 권력과 결탁한 수구 기득권 세력들은 50 여 년간 분단의 잇속을 챙기며 좋은 세월을 구가해왔다. 통일이 되면 하루아침에 분단체제에서 누려온 그 달콤한 잇속을 뺏긴다고 생각하니 심각한 박탈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법도 하다. 통일은 국민 대다수의 공감대 위에서 반통일 세력의 음험한 술책이 부질없음을 폭로하고 이를 설득할 수 있을 때 현실화된다.<김현돈·제주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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