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정치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지극히 정치에 민감하다. 코가 맹맹한 여름날의 고뿔도, 툭하면 도지는 울화도 바로 그 민감한 체질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몸이 불편하거나 정신적으로 산란한 것도 정치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지레짐작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정치(행정을 포함한)가 잘 이루어지면 세상이 편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혼란이 그득하다고 한다. 때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때는 정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고, 세상이 영 형편없다고 느낄 때면 정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다. 정치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치는 누가 하는가? 이른바 정치가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들이 뽑은 사람들이다. 우리들 대신 힘든 일을 하라고. 그래서 그들을 선량(選良) 또는 공복(公僕)이라고 한다. 당연히 그들은 우리들을 위해 정치를 잘하는 것이 임무이자 권리일 것이다. 이는 내가 알고 있는 최소한의 정치 지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살았던 40여 년의 세월 동안 정말 제대로 정치가 이루어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정치를 믿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고, 그 쪽을 향해 오줌조차 누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정치에 체질적으로 민감하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작심하고 내 오랜 질병을 잠재우기 위해 직접 정치에 나서기로 했다. 막상 나서기는 했으나 과연 어찌 해야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어서, 옛 서적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요행 아주 그럴싸한 말을 하나 발견하였다.

천하위공(天下爲公). 얄궂게도 대만 초대 총통 장개석이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이 말은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말이다. "큰 도가 행해지는 세상에는 천하가 모두 공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진 이와 능한 이를 선출하여 관직을 맡게 하고, 사람들간의 신뢰와 화목을 강구토록 하였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脩睦)."그렇다. 세상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공적인 것이다. 이미 인간(人間)의 존재 자체가 더불어 있음, 즉 '間'에 있음이니 인간 자체가 사사롭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인간이 단 한 명만 생존하고 있다고 해도 이외에 다른 물체가 존재한다면 이미 세상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공적인 것이니 당연히 나름의 질서가 있어야 할 것이고, 공존을 위한 믿음과 조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남들보다 어질고 나은 이를 선출하여 그들에게 공적인 세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당연히 어질고 나은 이를 선출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는 앞서 말한 바대로 기대할 바가 아니다. 결국 어진 이나 능한 이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덜 어진 이, 덜 능한 이인 내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간의 신뢰와 화목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과연 가능할지 여부는 알 수 없으되,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대안이자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마음먹은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비록 덜 어질고, 덜 능한 이들이지만 이 세상이 지극히 공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에서 사적인 일로 바쁜 요즘의 어진 이들이나 능한 이들보다 나으며, 비록 높은 관직에 올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높다란 자리에 앉아 회전의자만 뱅글뱅글 돌리며 잔머리 굴리고 있는 이들보다 더욱 높은 곳을 지향한다. 그리하여 내가 단언하겠는데, 이제부터 정치는 우리가 한다. 너희는 손떼라!<심규호·산업정보대 교수·중국어통역과>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