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제주특별자치도여성특별위원회 사무국장

가을 소풍이 한창이다.

김밥 도시락을 등에 지고 오등봉, 별도봉으로 소풍가던 때가 언제였던가. 요즘은 삼각 김밥이니 참치 김밥이니 누드 김밥이니 이름만큼 종류도 많고 맛도 화려하다지만. 그 때는 그야말로 ‘순수’ 김밥이었다. 햄도 아닌 분홍색 소시지와 노란 단무지, 그리고 시금치만 단출하게 들어간 김밥. 요즘은 그런 김밥을 원조김밥이라고 부른다는데.

소풍을 가기 전 날부터 잠이 설렜다. 날이 맑을까? 비가 오지는 않을까?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이 들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눈을 떴다. 살며시 부엌으로 나가보면 하얀 밥 위에 빨갛고 노란 꽃이 피어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 곁에서 옆구리 터진 김밥을 하나씩 입에 주어 담으며 도시락을 구경하다 보면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도시락과 함께 챙겨 넣은 20원짜리 ‘자야’ 한 봉지. 평소에 먹던 10원짜리 ‘라면땅’보다 곱절은 비쌌지만 그만큼 더 고소했던 그 과자를 등에 짊어지고 걷던 소풍 길. 발걸음이 하늘에 뜬 구름마냥 둥실거렸다.

도착해서 장기자랑을 했던가. 보물찾기를 했던가. 그런 시간은 느리게만 흘렀다. 오로지 마음은 점심시간에 가 있었다. 김밥엔 물기가 돌아 질척하고 들큰한 냄새가 났지만 맛은 꿀맛이었다. 오로지 그 순간만을 위해 소풍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 부어넣고 돌아오는 내내 한 가닥씩 집어먹던 ‘자야’까지. 소풍을 추억하는 내 따스한 기억이다.

 

딸아이가 소풍을 간다기에 김밥을 싸려 했더니 한 마디 한다.

“아, 김밥은 지겨워. 좀 다른 게 없어? 차라리 그냥 도시락을 싸줘.”

언젠가 어머니가 아파서 소풍에 김밥을 못 싸갔던 날, 맨 밥이 부끄러워 가려가며 먹었던 이 엄마의 어린 시절을 딸아이는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내 아이는 맨 밥에 집에서 먹던 김치, 콩나물 무침, 계란말이를 조금씩 싸갔다. 자기 말로는 인기 ‘짱’이었다는데.

늘 맛있는 게 널려 있고, 외식과 쇼핑과 여행으로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 그 무엇이 이 아이들에게 설렘과 행복을 맛보게 할 수 있을까. 가난해서 행복했던 시대와 풍요로워 오히려 행복이 결핍된 시대, 이 역설이 나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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