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면>“제주도에 가을이 사라지는 것 같다”

최근 제주지역의 기후 변화는 기상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분명해지고 있다. 제주지역이 아열대기후로 바뀌어가면서 한라산의 식생은 물론 생활 환경에 따라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따뜻해지는 계절…생활지도 바뀐다

제주지역의 기후가 아열대기후로 변하고 있다. 아열대기후는 월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이 8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말한다.

제주지역의 평년기온은 1930년대에 비해 1.6도 상승했고 겨울길이는 지난 30년간 24일 줄어들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제주지역의 4~11월 8개월간 월평균 기온은 10도 이상으로 아열대 기후의 경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지역에서 최초로 번식에 성공한 물꿩은 열대성 조류. 물꿩 외에도 지난해 갈색얼가니새와 밤색날개뻐꾸기 등 열대성 조류가 심심치않게 출연했다.

2001∼2005년의 전국 열대야 일수를 보면 서귀포와 제주지역이 각각 25.4일과 19.8일로 전국 1·2위를 차지했다.

1940년대에는 4월이던 벚꽃 개화시기가 1990년대 들어 3월로 앞당겨지는 등 60년간 봄꽃 개화시기가 보름 정도 빨라졌다.

한라산을 대표하던 구상나무림이 사라지는 대신 조릿대가 폭넓게 자리하는 것 역시 기온 변화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바다 역시 기후 온난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제주바다의 수온이 0.8도 상승했다. 이같은 해수온 상승으로 열대 해양생물인 말미잘과 산호초 등이 확산되고 있으며 갯녹음 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이동이 가능한 어류와 달리 직접 이동이 불가능한 패류와 해조류는 수온 상승으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를 입고 있다.

농촌진흥청 난지농업연구소는 25년 이후 감귤재배 최적지가 전라도와 경상도 평야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변화대로라면 감귤재배 최적지 면적도 제주만 현재 3만1679㏊에서 11만4174㏊로 3.6배 늘어나고 전국적으로는 30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게 난지농업연구소의 분석.

감귤 재배지가 늘어나는 것에 이어 가을철 온도상승으로 당도·산 함량이 떨어지고 병해충 발생률은 증가, 다른 지역에 비해 품질도 뒤쳐지는 등 제주 감귤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가을 이름값 못한다

생활환경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9월 제주 섬을 흔든 ‘나리’는 가을 태풍이다. 태풍만이 아니라 9월 두 차례 집중호우에 이어 10월 들어서도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등 지난해부터 유독 도드라진 가을 이상 기후에 기상 관계자들조차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태풍 나리 때도 그랬지만 ‘지형적 영향’에 집중호우에 이은 비·바람은 인명피해를 포함 제주 전체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특히 10월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기상이변’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 양 자체가 많아졌는데다 바닷물 증발량도 늘어나면서 ‘폭우’가능성이 커졌고 예년이면 벌써 세력이 약화됐을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직 세력을 유지,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를 발생시킨다는 분석이다.

두 차례 집중호우와 많은 비·강한 바람을 동반한 가을 태풍 ‘나리’가 제주를 휩쓸고 지나가며 9월중 제주에 내린 비의 양은 880.0㎜로 평년 강수량 188.1㎜에 비해 무려 4.7배 많은 비가 내렸다.

10월 역시 평년에 비해 많은 비가 내렸고 11월 역시 이런 걱정을 벗어놓기 힘든 상황이다.

기상청의 월 기상예보에 따르면 올해 제주 11월은 평년에 비해 높은 기온 분포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기상청은 아직까지 제주 주변 해수 온도가 높은 상황이라 이번 같은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또 내리지 않는다는 보장을 감히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사실상 구분이 모호해진 ‘가을’탓에 도내 상가들에서는 ‘가을’매기가 사라지고 없다.

제주중앙지하상가에서 3년째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가을상품은 박스를 풀기도 전에 접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예년에는 추석을 전후해서 판매가 좀 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