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조조정 때문에 주위가 야단법석이다.특히 지금까지의 질서가 경제적 효용성과 실용성에 의해 바뀌면서 충격이 커지는 느낌이다.대학도 예외는 아니다.전통적인 대학의 이념이나 설립목적은 유명무실해졌고,오직 물적 생산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체제로의 변신이 요구되고 있다.그래서 외국어같은 몇과목을 제외하면 인문학은 아예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최근 이같은 변화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이 거대집단의 소리에 묻히고 있다는 점이다.민족이나 통일,재벌개혁이나 의약분업의 논의는 무성한데도 서민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야기들은 그렇지 못한 느낌이다.물론 국제사회의 경쟁체제에 노출된 우리 민족 앞에 작은 이야기들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을지 모른다.그러나 작은 이야기들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정말 하찮은 것인가?

중국이나 미국 등을 여행할 때 우리는 대부분 그들 문화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곤 한다.사실 그렇다.중국 황제가 기거하던 자금성에 비하면 우리의 경복궁은 너무 초라하다.만리장성의 거대한 위용 앞에 우리의 환해장성은 비교 자체가 무리이다.결국 웅대한 규모 앞에 자신이 왜소해지고,마치 그것이 국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처럼 이내 주눅이 들곤한다.

그러나 작은 것이 약점이 될 수는 없다.문화는 특수성에서 고려되어야만 한다.규모가 크다고 해서 선천적으로 뛰어난 것이 아니며,작다고해서 본래 열등한 것도 아니다.중국은 옛부터 외침이 끊이지 않던 광대한 땅을 지키기 위해 중앙의 권위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절대권력을 신성시하기 위해 황제를 신적 존재로 꾸미지 않으면 안되었다.그래서 그들 문화는 크고 권위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큰 것,많은 것이 미덕이 되고 말았다.소형차 대신 중형차가 잘 팔리고,고층 아파트가 선호되는 경향들이 그렇다.돌이켜보면 우리는 지난 30년동안 가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듯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그래서 가난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주변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을 기다렸고,이같은 강박관념에서 사로잡힌 우리는 스스로 ‘최대’,‘최고’또는 ‘최초’라는 수식어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작은 목소리,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다.규모면에서 전국의 1%밖에 안되는 제주도가 홀대받는다는 볼만이 있는 것도 이런 풍토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 같다.최근의 경제적 시각에서 볼 때 인구 50만의 제주도를 다른 시·도에 비해 실용성 내지는 효용성 면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사회,특정 집단에 대한 정량적 평가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그것은 각자 그들 나름의 존재이유와 특수한 삶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바로 이점을 고려할 때 제주도의 가치는 정량적 평가에서는 계산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우리는 주변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그들의 존재 이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김은석·제주교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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