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명의 근원인 이 자연을 떠나, 이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생명체이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에 눈이 멀어 인간 생명의 줄인 자연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존재의 본질과 생명의 실상을 바로 깨닫고, 생명의 근원인 자연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생태적 감수성 회복 없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의 멸종과 같은 생명의 위기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생태적 각성은 생태적 감수성 회복을 위해 필요하고 생태적 각성이란 나와 자연 생태계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다. 사람은 지구 전 생태계의 생명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살아 갈 수 없는 존재다. 우주 대자연 속의 물질들이 나를 구성하고 나의 생명을 유지해 간다. 물이 없으면 나 또한 없으며, 공기가, 밥이, 저 나무가 없으면, 저 구름과 바람이 없으면 나 또한 없음을 아는 것, 자연과 나는 분리될 수 없음을 온 몸으로 아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과 세계 실상에 대한 근원적인 깨우침을 얻는 것이 생태적 각성이며 생태적 각성을 통해 생태계 속의 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생태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갖기 위해선 먼저 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눈이 아닌 자연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함께 살려는 생명평화가 가슴속에 충만해야 한다. 즉 생태주의자, 생명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일반인들에게 생태적 감수성과 상상력은 가능한 자연에 들어야 쉽게 얻어 질 수 있다고 본다. 자연에 들면 들수록 내 맘속에 스펀지처럼 자연이 스며들어 절로 자연이 내속에 들어와 자연을 닮게 되어 하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에 자주 들어야 한다.

사실 콘크리트 빌딩 속 삭막한 도시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갖기란 보통 사람으로선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치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도시는 우리 생명의 터인 자연생태계에서 멀어지게 한다. 사람은 본래 직접 볼 수 없는 문제들은 잘 다루지 못한다. 집과 사무실에 틀어박힌 채 짧게 깎인 잔디밭과 포장도로를 통해 야생과 격리된 생활하다보면 우리가 식물, 동물, 곤충, 미생물과 그들 때문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도시 속의 자연은 외래종 가로수와 화단의 꽃들, 동물원의 색다른 동물들 이런 살아 있는 것들이 정서적 기쁨을 주긴 하지만 깊은 감정을 끌어내기는 어렵다.

자연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름이며, 생김새며, 좋아하는 먹이며 사는 곳이며, 성격이며. 그러면 친구처럼 연인처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맘이 생기면 더욱 알고 싶어 하고 아는 만큼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특히 식물이나 동물의 이름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느끼는 감정이 아주 다르다. 길옆을 가다 이름을 모르고 보면 그냥 잡풀이지만 이름을 알고 보면 아는 친구로 다가 온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사귐의 첫 단계가 바로 서로의 이름을 아는 것이다.

앞으로 생태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회복된 사람은 자연을 바라보면 볼수록 경이로움과 떨림, 경외와 신비, 아름다움 등이 절로 솟아날 것이다.류성필(제주도의회 정책자문위원, 환경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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