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만 알았거나 생전에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혈육을 만나
는 일이란 당사자에겐 충격과 같은 사건이나 다름없다. 말이 55년이지 열살
때 헤어진 자식이라도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가 됐을 터이니 더욱 그럴 것
이다.

몇일전 한 신문은 오늘 상봉을 앞둔 남북이산가족들이 그같은 ‘상봉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었다. 기사에서
정신과 의사들은 상봉자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라는 점을 가장
먼저 걱정했다. 그래서 젊은 사람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더욱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상봉 후에는 월남전 참전 군인들에게서 나타났던 ‘외상후 스트레
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상봉자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
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만나게 되지만 이성을 되찾게 되면 ‘서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봉자들에게 냉철한 이성보다도 철저하게 감정적으로 상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야 상봉의 충격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남북한간의 문화적 충격은 이외
로 적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충격은 몇년전에 있었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때 천주교 원주교
구 지학순주교가 누이를 만난 뒤 심한 허탈감에 빠져 끝내 숨진 사실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지 주교의 상봉을 지켜봤던 많은 사
람들은 기적과 같은 만남에 눈시을 붉혔다.

상봉 후의 상실감은 생전에 한번만이라도 보고자 했던 간절한 열망과 정
비례한다.

특히 오늘 남한과 북한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이산가족 교환상봉은 여느
만남보다도 더욱 애절한 듯 싶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책의 제목처럼 제주에서도 한 가족은
북에 두고온 가족을 만나기 위해 북으로 갔고, 한 가족은 북에서 내려오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갔다. 그들에겐 어쩌면 오늘의 상봉이 미처 준
비되지 않은 만남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몇 일 밤을 뜬 눈으로 새우며 오
늘만을 기다렸던 이산가족들에게는 충격과 허탈감도 모두 사치한 얘기이
다.<김종배·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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