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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오름과 정물오름 중간에 자리잡은 새미소, 못 가장자리에 인공이 가
해졌지만 어엿한 화구호(火口湖)다.


◈정물·새미소(한림읍 금악리)

 마른장마와 불볕더위로 사람들을 괴롭혔던 여름이 드디어 가을에 쫓겨가
고 있다.어떻게 알아챘을까.입추가 지나기 무섭게 벌레들의 노랫소리가 풀숲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여름이 가는 소리를 듣기위해 오름이 아름다운 마을,한림읍 금악리로 간
다. 한림읍 금악리는 물이 많은 곳이다.거문오름 뿐만아니라 정물·새미소
오름 주변에도 크고 작은 습지가 골고루 분포하고 있는데다 굽이굽이 이를
찾아 다니자면 하루 일정으로는 여간 빡빡하지 않다.

 너른 들판에 배부른 암소가 누워있는 모양의 거문오름에 올라가면 우선
화구호가 있고 그 밑에는 큰한새미·새한새미·작은한새미·생이물·갈래생
이물·논아진밭물 등이 있다.

 또 마을안의 병듸못·무두왓·일등이못·함케물과 정물오름 새미소 오름
일대에도 습지 지형이 많기 때문에 하루 일정으로 이를 다 둘러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물오름은 우마들의 낙원이다.풍부한 목초에 충분한 물이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쇠락함이 없어 제주섬에서 으뜸가는 목장의 하나로 이어져 오고
있다.

 정물은 쌍둥샘,요즘말로 하면 안경샘이다.옛 기록에도 “정수악(井水岳)안
에 쌍천(雙川)이 있고 강씨자(姜氏子)가 잉어를 놓았다”고 나온다.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안경샘은 숟가락 모양을 하고 있고 면적이 40
㎡가량 된다.두군데의 샘 가운데 큰 쪽은 수심이 1m이상으로 깊다.

 용천수로서 수질이 매우 맑기 때문에 이시돌 목장이 조성될 당시에는 인
부들이 이 물을 식수로 활용했다.

 이 못 바로 옆에는 조그마한 시멘트 건물이 한채 자리잡고 있다.이곳에는
물을 끌어올렸던 동력시설이 녹슨 채 남아 쓸쓸히 연못을 지키고 있다.

 대개 정물(井水)하면 안경샘 뿐만아니라 안경샘과 수로로 연결돼 있는 곳
에 형성된 늪 형태의 습지와 오름중심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습지 등 3군데를 통칭한다.

 이 일대는 올방개·세모고랭이·송이고랭이·애기부들·올챙이솔·가래
등의 수생식물이 어우러져 늪의 싱싱함을 연출하고 있다.

 또 오름 북서쪽 입구에는 이시돌목장이 지난 70년대에 조성한 저수지가
있다.이 저수지는 예전에 돼지를 사육할 당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며 수량이 무척 풍부했었다고 한다.

 길 안내를 맡은 강한순씨(53·한림읍 금악리)는 “처음 이곳에 저수지가
들어설 때에는 비닐을 깔고 흙을 덮고 다시 석축을 쌓고…,정말 공을 들여
만든 것이었으나 지금은 쓰임새를 잃어 가끔 붕어 낚시꾼이 찾을 뿐”이라
고 말했다.

 주요 서식동물로는 장구애비·소금쟁이·물달팽이·참게·개구리·붕어·
미꾸리·유혈목이 등이 있다.

 강씨는 “예전에는 안경샘과 이어진 수로에 미꾸리가 많아 동네 어른들이
여름철 보신용 먹거리로 잡아먹곤 했다”면서 “지금은 가뭄 때문에 물이
줄고 혼탁해져 미꾸리나 참게는 찾아본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새미소는 북서쪽의 거문오름과 남동쪽의 정물오름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오름은 외형과는 달리 안에 들어가면 나직나직한 다섯 봉우리가 돌아가
며 완만한 기복으로 에워싼 가운데 2500평 가량의 화구호(火口湖)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 주민들은 “거문오름 화구호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도 이곳만은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을 정도”라고 자랑한다.

 근래들어 이 일대는 천주교의 은총의 동산으로 조성됐다.돌담을 막고 물
을 막는 대공사를 통해 큰 연못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며 세상의 평안을 바랄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

 다만 종래 분화구에 형성됐던 늪이 파괴돼 사라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
이다.

 박남진 금악리 노인회 총무(66)는 “원래 이 일대는 ‘새미소’라는 자그
마한 연못이 있었고 주변은 거의 논밭이었다.그런데 이시돌목장이 들어선
이후에 주변의 논까지 연못으로 조성함으로써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 거들었다.

 ‘새미’는 샘을 뜻하는 제주말이며 ‘소(沼)’는 깊은 못을 뜻하는 한자
어다.또 ‘샘물(泉)’이 ‘맛있다(味)’는 의미에서 새미소라고 부르기도 한
다.어쨌거나 오름 이름조차 새미소다.못이 오름이자 오름이 곧 못이라는 특
이한 지명인 것이다.

예전에는 이 일대가 바닥이 질펀한 상태의 늪이었기 때문에 뱀과 개구리
가 많았다고 한다.

 근래에는 못을 조성한후 방류한 붕어가 서식한다.또 왜가리가 가끔 이곳
을 찾아와 휴식을 취하기도 힌다.

 수생식물로는 마름·골풀·세모고랭이 등이 있다.

정물과 새미소를 거쳐 금악리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논아진밭물을 취재했
다.북쪽에는 거문오름이,동·서와 남쪽에는 빽빽히 조림된 삼나무와 양돈장
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좀처럼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물빛은 거무스름했지만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맑은 상태였다.

 취재팀이 사진을 찍기위해 어른 허리만큼 자란 물풀을 헤치며 다가서는
순간 왜가리·논병아리가 푸드덕하고 떼를 지어 날아 올랐다.순간,강한 생명
력이 느껴졌다.

 이들의 힘찬 날개짓을 보고 누가 감히 희망이 아닌 것을 얘기할수 있겠는
가.

 망원렌즈와 쌍안경으로 녀석들을 끌어당겨 봤다.취재팀은 어떻게든 그들
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고 싶었다.<취재=좌승
훈·좌용철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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