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만 겨레의 한반도를 눈물바다로 만들고 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오늘로 막을 내린다. 너무도 긴 이별이었고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다. 부모와 형제 자매와 생이별을 하고 50년을 살아온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만나기는커녕 편지 한 줄 주고받지 못하고,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살아온 이산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오죽하면 인생이란 고통의 바다 가운데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으뜸가는 고통으로 치겠는가? 이 고통에 더해서 가족이나 친지가 북녘에 혹은 남녘에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그 사실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살아온 그 삶은 얼마나 쓰라린 것인가? 그들의 눈물은 피눈물이었다. 그들의 포옹은 용광로와 같았다.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고,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러나 상봉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면서 그동안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면서 가슴 한편에서 분노와 수치가 치밀어 오른다. 누가 이들의 삶을 이렇게 파괴했는가? 무엇이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간에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8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컴퓨터 추첨에 당첨이 되어야 하고, 3박4일이라는 짧은 만남으로 언제일지 모르는 재회의 날을 하염없이 기약해야만 하는가? 우리 민족의 능력으로는 혈육의 상봉조차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말인가?

 언론사 사장단과의 만남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분단과 전쟁의 비극이 열강의 책동에 의한 것인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 북측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비난할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옳은 지적이다. 우선 일본이, 다음으로는 미국과 소련이 이 모든 비극의 원인제공자들이다. 이 드라마를 지켜보는 미국 언론은 정말 북한이 변하고 있는지 의심스로운 눈으로 보고, 일본 언론은 북일 수교를 의식해서 냉정하게 보고 있으나 통제사회의 북한을 넌지시 꼬집고 있으며, 러시아는 시큰둥하다는 보도를 보면 이 모든 일을 저질러 놓고도 딴전을 부리는 그들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만을 탓하기에는 5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길지 않은가? 우리는 그동안 무얼 해왔는가? 우리가 지금까지도 외세에 기대어 분단과 갈등을 고착화한 책임이 있지 않는가?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체제경쟁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관심했으며, 혹은 배신자라는 증오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상처를 더 크게 만들어 온 우리의 편견을 고백하며 용서를 청해야 할 때이다.

 늦었다. 너무 늦었다. 양측이 우선 100명씩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감지덕지 했지만 며칠을 기다리지 못해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며 불효자를 용서해 주길 비는 자식들의 피울음을 언제까지나 더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의 상봉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부러움과 슬픔의 눈물을 쏟는 나머지 7만 6천여 이산가족들에게 언제까지나 당첨의 행운을 기다리라고 할 것인가?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저 김정일의 한 마디와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에 온 겨레가 일비일희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 혈육의 상봉이란 너무도 기본적인 인간 권리의 확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되어 아무리 감동적인 드라마일지라도 이런 아픔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더 이상 연출되는 일이 없도록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발걸음의 속도를 높여야겠다.<임문철·천주교서문교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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