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통일이 돼서 꼭 다시 만나 함께 살자”

 반세기에 걸친 단장의 이산...꿈같은 짧은 만남...그리고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통곡의 생이별.

 50년의 기다림 끝에 눈물로 시작된 ‘감동의 인간드라마’는 사흘만에 눈물로 막을 내렸다.

 남과 북의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15일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던 이산가족 방문단 200명(남·북한 각 100명)은 18일 대한항공편으로 각각 귀환했다.

 본도에서 유일하게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돼 평양으로 갔던 박용화씨(83·제주시 연동)는 아들과 여동생을 남겨둔 채 애끊는 가슴을 부여안고 18일 서울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서울에 왔던 제주출신 홍삼중씨(65·원산의대 교수)와 강원숙씨(66·인민배우)도 목메인 이별의 설움을 안고 다시 북으로 헤어져 갔다.

 평안북도 영변군 고성면이 고향인 박용화씨는 평양에서 다섯 아들중 치문·치순·치원·치영등 네아들과, 명화·정화·계화등 여동생 셋을 만났다.

 특히 평안남도 개천에서 술공장에 다니고 있다는 맏아들 치문씨(62)는 이번 이산가족 확인과정에서 사망으로 통지가 와 죽을 줄로만 알았다가 살아 상봉해 그만큼 기쁨도 컸다.

 박씨는 이러한 피붙이들을 만난 순간에 대해 “뭐라 형언키 어려운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물을 때는 모두들 목이 메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고 했다.

 “몇 년후 통일이 오면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홍삼중씨를 다시 북으로 보내야 했던 남측 혈육들도 더욱 커져버린 이산의 설움을 달랠길이 없었다. 삼중 삼촌과 서울서 한솥밥을 먹던 조카 홍성미씨(59)는 삼촌에 대한 애절한 심경을 글로 적어 드렸더니 삼촌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밤새 눈물을 흘렸다.

 6·25때 행방불명이 됐다가 북에서 인민배우가 돼 서울로 왔던 강원숙씨도 형과 여동생은 이번에 상봉했지만, 중풍으로 몸이 크게 불편한 큰 형 용숙씨(71)는 끝내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북으로 돌아가야 했다.<서울=진행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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