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애월읍 봉성리에서 아버님 홍동원님과 어머님 양정생님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다. 우리 집안은 일제의 수탈과 함께 4·3등으로 많은 고난을 겪은데다 이산의 아픔까지 짊어진 것이다. 

 이번에 평양에서 온 셋째형님 홍삼중은 지난 1949년 제주에서 서울로 유학을 갔고, 광신 상업중학교 2학년때 6·25전쟁을 맞아 학교간다는 한마디 말만을 남긴채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 삼중이는 절대 안죽었다”고 하시면서, 불전에 기도하시던 어머님, 50년만에 두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순간인 6월15일은 7천만 동포의 가슴을 울렸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때만해도 우리 집안에 경사가 바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7·26 남북 200명의 이산가족 명단이 발표된 후, 가족들은 형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며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지난 50년간 생사만이라도 확인하였으면 하던 바램이 50년만의 만남이라는 현실로 다가오다니 이 벅찬 감동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8월15일 TV에서 북측 방문단의 도착장면을 보았고, 청사로 들어서는 형님을 알아보고 열광하던 가족들, 만나는 순간 얼싸안고 흘렸던 50년만의 진한 눈물...

 형님은 나에게 “어렸을 적 그렇게 맞으면서도 굴복을 안하던 그 고집으로 성공했구나”라며 내 등을 두드려 주셨고, 딸만 다섯이라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는 “딸이 더 좋아”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30년동안 동생의 제사를 지냈다는 둘째 형님(홍언중)의 말에 “산 사람이 30년 제삿밥을 먹었으니 나는 오래도 살겠다”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던 형님의 여유있던 미소는, 50년 동안을 만나지 못했어도 “돌아가실 때까지 삼중이는 지금 살아있을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으셨다”는 어머님의 소식을 듣고는 이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형수님은 어떤 분이냐는 질문에 마음씨가 고운 평북강계 미인이라고 답하셨다.

 누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느냐는 말엔 “내가 미남이고 의과대학을 나왔는데 나에게 안 반할 수 있나”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셨다.

 50년간 다른 체제속에서 지냈다 해도 혈육이란 어떤 것도 포용한다는 것을 진정 느끼게 했던 만남이었다.

 16일 오후 기자들과의 대담중 김일성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인사, 빨리 통일이 되어 가족과 같이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으셨다.

 형님은 그 동안의 일을 가족들에게 들려주셨다. 군에서 제대하고 전문학교에 18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갔으며, 졸업후 2명이 의과대학에 합격하였다. 의과대학에서 5년, 2년간의 대학원 과정, 3년간 수련의 과정을 거쳐 10년간 장학금을 타며 교육을 받았다고 자랑도 늘어 놓으셨다.

 30년간 강원도 도립병원(원산) 외과과장과 원산 의과대학 교수로 겸직하고 있으며 능력만 있으면 정년없이 근무한다고 했다. 

 저녁 만찬중에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라 하셨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서 “이제야 가는구나”하셨다니 50년간의 만남이 이렇게 한순간 이뤄짐을 과연 믿을 수 있었을까. 또한 1개월동안 애타는 심정은 어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식사중에 가족들이 손을 맞잡고 울면서 부른 ‘기러기’ 합창에 조용히 흘리셨던 눈물...

 17일 아침,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하여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장군님 영도하에 똘똘 뭉쳐 있으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말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날 떠나면서 “통일이 되면 나는 죽어 제주에 묻히고 싶다”고 하시는 형님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통일이 되어 형님 소원을 풀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형님을 항상 생각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때까지 형님도 힘내십시오”

 경의선이 곧 연결되면 경원선도 연결되겠지요. 그 첫 기차, 첫 손님으로 형님께 달려가지요. 아쉬움만 남긴 채 헤어진 지금, 어찌 복바치는 눈물이 없겠는가.

 이렇게라도 만나지 못한 수 많은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씻어 줄 통일을 위해, 우리의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고향 제주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형님과 한라산을 거니는 상상을 해봅니다.<서울=진행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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