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지으려 수도를 틀었다. 구르릉 소리만 날 뿐 물이 안 나온다. 어라? 바깥 수도를 틀어 봐도 마찬가지다. 이웃 몇 집에 전화를 걸어본다. 어젯밤 늦게부터 안 나왔단다. 마을 이장, 집주인 할아버지한테도 하소연해본다. 우리 집은 상수도관에 문제가 생겨 농수를 써왔다. 그게 기온이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겼나 보다.
  준비 없이 물이 안 나오니 난감하다. 마실 물도 없다. 어젯밤 차 끓이다 남은 물이 주전자에 조금 남아 있다. 아쉬운 대로 그 물을 부어 마신다. 마실 물이 그뿐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갈증이 난다.
  밥 짓기를 포기하고, 있던 식은 밥 데워 김치랑 대충 챙겨 먹는다.
 싱크대에는 어제 늦은 저녁 먹고 미뤄둔 설거지가 그득하다. 음식물 찌꺼기가 말라붙은 채 쌓인 설거지 감을 보니 목이 더 타는 것 같다. 부지런히 해둘걸. 습관적으로 수도꼭지를 올려본다. 여전히 물 한 방울 안 떨어진다.
  씻을 물도 없다. 허드레부엌 대야에 받아두었던 물로 대강 세수를 한다. 평소에는 걸레나 빨 것으로 생각해온 물이다. 그 나마 한 대야 가득 있는 것도 아니다. 문득 세수를 하고 난 물을 버리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물에 걸레를 빤다.
  세탁기에도 빨래가 한 가득이다. 언제든 버튼만 누르면 세탁기 수조 안으로 물이 콸콸 쏟아지던 게 꿈만 같다. 빨랫감을 줄여보겠다고 아이에게도 어제 입혔던 옷을 그냥 입힌다.
  도대체 물이 안나오니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반나절인데 생활이 엉망이 된 것 같다. 단 하루 안 감았을 뿐인데 머리가 자꾸 근질거린다. 사나흘 씻지 않은 기분이다. 찜찜하다.
  언제까지 안 나올지 모르니 우선 급한 대로 상수도가 나오는 이웃집으로 달려간다. 주전자며 들통에 물을 떠온다. 그 물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점심을 지어 먹는다. 야채 씻고 난 물로 설거지를 한다. 헹굴 물이 부족하니 세제도 아예 안 쓴다. 설거지 하고 난 물로는 행주를 빤다. 다시 그 물을 허드렛물로 쓰려고 대야에 모아 둔다.
  평소에 이만하게 물을 귀하게 여겼다면 어땠을까? 언젠가 신문에서 보았던 사진이 떠오른다. 물 한 주전자 구하려고 수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는 아프리카 아이. 슬며시 부끄러워진다.

  물은 우여곡절 끝에 그 날 저녁이 돼서야 나왔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는 순간,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막혔던 내 혈관이 뚫린 듯 마음이 시원해졌다. 그러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세탁기도 펑펑 돌리고, 그릇도 다시 꺼내 씻고, 샤워까지 오래오래 했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     <김유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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