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분단의 장벽을 넘기 위해 올 여름은 그렇게 무더웠을까? 50년 이산의 아픔과 통곡의 상봉을 보기 위해 올 여름 매미는 그리도 슬피 울어대었을까? 생사는 물론 행방조차도 알수 없었던 내 부모형제 그리고 처자는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리던 나날이었던가.

 새천년 8·15 광복절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있는 날이었다.반세기 분단의 장벽을 넘어 200명의 이산가족이 꿈에도 그리던 혈육을 찾아 서울로 오고,평양으로 갔다.감격의 순간이었다.비록 3박4일 짧은 만남이고 천만 이산가족중 극소수 였지만 칠천만 우리 겨레가 함께 했던 만남이 아니였던가!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살아줘서 고마울 따름입니다”하며 통곡의 눈물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잃어버린 세월을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를 부둥케안고 통곡하는 북에서 온 아들의 절규,곱던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 만난 아내와 남편,인고의 수절,재혼의 죄책감의 만남은 또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누가 그들에게 응어리진 흐느낌을 안겨주었을까? 온 세계가 지켜본 우리 분단의 아픔은 끝남이 아니라 시작이다.그리고 한편의 드라마로 끝나서도 안된다.

 나는 이번 이산가족의 상봉을 바라보면서 이산의 아픔이 그들만의 고통이 아님을 다시한번 행각했다.

 이제 그들은 이별의 아쉬움과 재회의 희망을 안고 돌아가고 돌아온다.그래서 이제 만남의 문은 열렸다.경의선으로 경원선으로 기적을 울리며 오가며 함께 살 수 있는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이게 바로 통일로 가는 길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가야할 길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곳곳에는 암초가 있다.아차 잘못했다가는 벼랑길이다.그래서 우리는 좀더 차분해지고 냉정해지자.만남의 순간을 즐기는 관객이 되어서는 안된다.순서를 생각하자.좀더 기다리자.50년도 기다리지 않았는가.작은 일이 큰 일을 그르친다.설령 좀 거슬리고 못마땅한 일도 있었지만 이해하자.이번 상봉에서도 그런 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TV 보도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보도장면은 이산가족에게 많은 부담이 되고 좋지않은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나 생각된다.아흔살 노모에게 연출을 강요하는 모습은 시청자로 하여금 거부감을 갖게 하고 결국은 보도의 신뢰감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상봉의 격정에서 일상의 생활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고령의 노부모들의 심신을 편안히 해드리는 일은 가족들의 몫이다.<김종두·아동문학가·봉개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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