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줄씨줄] 24시간 학원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장편동화 「모모」는 ‘시간 도둑과 잃어버린 시간을 인간에게 돌려준 소녀의 불가사의한 이야기’다. 평화로운 마을에 어느날 회색신사들이 나타난다.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시간으로 생명을 연명해가는 시간도둑들이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꽃을 가꾸고, 부모를 돌보고, 아픈사람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등의 일들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며 이 시간들을 절약해서 나중을 위해 자신들의 시간은행에 저축해 두라고 부추긴다.

사람들은 시간도둑들의 꼬임에 넘어가 시간을 아껴 일하게 된다. 어른들은 재빠른 일처리를 위해 점점 사무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으며, 아이들은 시간도둑 일당이 준 새 장난감 때문에 어울려 놀고 상상하는 즐거움을 잃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절약한 시간은 모두 시간도둑들이 훔쳐갔기 때문에 하나도 쌓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점점 불행해질 뿐이었다. 결국 시간도둑들의 정체를 알게 된 모모가 이들과 싸워 우여곡절 끝에 사람들에게 잃어버렸던 시간을 돌려주게 된다.

굳이 「모모」의 시간도둑들의 유혹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간은 흔히 돈이나 성공과 비유된다. 서점에 즐비하게 널린 각종 ‘시테크’관련 서적들은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강변한다. ‘아침형 인간’을 들먹이며 시간을 아껴쓰라고 충고한다.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3당4락(3시간 자면 합격하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니‘4당5락’이란 말로 대학에 들어가려면 잠을 줄여서라도 공부해야 한다고 강요당한다.

요즘 서울에서는 시의회가 상정한 ‘24시간 학원 허용 조례안’때문에 난리였다. 학교수업에 야간자율학습에 학원공부까지 파김치가 된 아이들에게 이젠 잠도 자지말고 서로 경쟁하라니 왜 아니겠는가. 학생의 수면권 침해라는 주장에도 “밤 새워 공부하다 학생이 죽은 경우는 없다”며 버티던 서울시의회가 각계의 반발에 밀려 결국 조례안을 철회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됐든 훗날 아이들이‘입시지옥’이란 기억뿐인 자신들의 학창시절 꿈과 추억을 훔쳐간 시간도둑들이 누구였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려 했는지 24시간 학원을 생각해낸 발상이 참으로 기막히다.<강경희·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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