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두왓. 예전에는 이 일대가 논으로 활용됐었다.


◈무두왓·일등이못·함케물(한림읍 금악리)

 여름이 가을에 권좌를 내주고 물러 앉는다.입추와 말복을 보내고 내일(23일)은 처서(處署)가 아닌가.절기를 놓고볼 때 엄연히 가을이다.

 폭염을 앞세워 사람들을 산으로 바다로 내몰았던 새천년 첫 여름이 드디어 가을에 쫓겨가고 있다.

 이 여름을 보내면서 아쉬움을 하나 끄집어 낸다면 그 옛날 동구밖에서 젖은 가슴을 말릴 때 황홀하게 피어오르던 무지개,그 무지개가 요즘에는 자주 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이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왜 해마다 여름이면 마른 장마가 반복되는 것일까.어디 이뿐인가.장마뒤에는 어김없이 큰 비가 와 이 땅을 할퀴고 간다.그것도 게릴라성 폭우라고 해서 집요하게 같은 곳만 공격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열대야도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매미들은 또 어떤가.너무 시끄럽다.악을 쓰며 운다.천적이 사라지고 먹이사슬에 이상이 온 것 같다.

 어찌보면 이 모든 게 인간의 탐욕이 빚은 결과가 아닐까.

 사람들은 상생과 순환의 원리를 무시한 채,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해안 조간대를 매립하고 오름을 뭉개 토석을 채취했다.

 숲을 헌 자리에는 택지가 조성됐고 콘크리트 둑으로 물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결국 썩은 못을 만드는가 하면 심한 악취를 품게 했다.

 분명한 것은 자연 학대는 반드시 자연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구는 살아있다.지금처럼 인간 탐욕의 배설물이 자연을 더럽힌다면 지구는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지구는 인간아닌,다른 생명붙이도 품고 있기 때문에 재채기를 하고 몸살을 앓게 마련이다.

 결국 그 몫은 인간이 감당해야 한다.

 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머릿말이 좀 길어졌다.취재팀의 이번 일정은 한림읍 금악리다.지난주의 정물·새미소에 이어 함케물·무두왓·일등이못 일대를 둘러봤다.

 금악리는 중산간 마을임에도 예로부터 물이 풍부해 논농사를 많이 했다.대표적인 곳이 새미소와 무두왓·뒷논 일대이다.

 70년대 후반까지 벼농사를 했던 이 일대는 그후 경제성에 밀려 폐답이 되고 만다.

 무두왓은 면적이 200㎡가량되며 금악 사거리에서 국도 16호선 상명리 쪽으로 30여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국도 16호선이 무두왓을 가로 질러 개설되는 바람에 무두왓 본래 크기의 절반이상이 잘려 나갔다.게다가 도로개설 과정에서 파낸 흙이 방둑처럼 쌓여 있는데다 잡목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드나듦이 여의치 않다.

 그러나 상수도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쓰임새가 무척 컸다.1∼1.5m의 담장과 돌계단,물허벅대가 보여주듯 멀리 상명·월림·저지 주민들도 이곳에 와 물을 떠다 먹었다고 한다.

 못 주변은 대나무와 버드나무·쥐똥나무·느티나무가 호위하듯 자라고 있다.대표적인 수생식물로는 여뀌·사마귀풀·차풀·네가래·실망초·돌피·세모고랭이·마름·가래·택사 등이 있다.

 인적이 뜸해 왜가리가 가끔 찾아오며 소금쟁이·게아재비·개구리 등이 서식한다.

 무두왓 한켠에는 주민들이 직접 판 우물이 옛 모습 그대로 뚜렷하게 남아있다.

 일등이못은 국도 16호선을 타고 금악리회관에서 4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예전에는 이 일대에 마을이 있었으나 4·3당시 마을이 소개되는 바람에 지금은 인적이 끊긴 상태이다.

 이 못은 말그대로 이 일대에서 ‘일등’가는 못이었으나 경지정리 과정에서 일부는 매립돼 옛 모습을 잃었다.

 함케물은 거문오름 남쪽 500m,해발 210m지경에 자리잡고 있는 우마급수용 못이다.면적은 270㎡가량 되며 팽나무가 연못에 드리워져 있는 게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근래에도 인근 축사에서 나온 소들이 이곳에 와 물을 먹곤 한다.

 그러나 물은 매우 혼탁하다.가뭄까지 겹쳐 수량이 크게 준데다 축산폐수·분뇨까지 흘러들어 악취까지 난다.

 수질이 다소 나아지기 위해서는 일단 큰 비가 내려 물이 많이 고여야만 할 것 같다.

이곳에는 느릅나무과의 팽나무를 비롯 이질풀(쥐손이풀과),고마리(마디풀과),개구리밥(개구리밥과),까마귀베개(갈매나무과),나자스말(나자스말과),큰고랭이·세모고랭이(이상 사초과),마름(마름과) 등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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