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 25일 보수마치고 개소식 열어
생전 모습으로 공간 재현·추모 작품도 전시돼

   
 
   
 
‘무명천 할머니’란 이름으로 제주4·3사건의 아픔을 전하고 있는 고(故) 진아영 할머니. 진 할머니가 살았던 작은 집에 다시 백열등이 켜졌다.

오랜만에 빛이 든 그녀의 방. 마치 진 할머니가 잠시 외출을 나간 집을 방문한 것처럼 그녀의 보금자리는 온기를 되찾았다.

고인을 추모하는 시(詩)의 시어들이 하얀 천에 바느질로 표현돼 벽에 내걸렸다. 살아생전 그녀의 손때가 묻은 반지와 목걸이, 머리빗, 바늘과 실, 증명사진, 동전, 열쇠 등 유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됐다.

분홍색 한복 저고리와 버선이 벽에 걸린 옷걸이에 단정히 걸쳐졌고, 방안 한 구석에 놓인 TV에선 진 할머니 생전의 모습이 영상으로 흐르고 있다.

부엌엔 진 할머니가 썼던 식기들이, 부엌 입구엔 그녀가 신었던 신발들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고인이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살았던 삶터가 옛 모습을 되찾았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공동대표 정민구·박용수·이하 보존위)‘는 40여일간의 보수작업을 마무리, 25일 낮 12시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진 할머니 삶터 현지에서 개소식을 열었다.

천장 방수공사와 도배, 돌담 및 화단 정비작업을 비롯, 진 할머니의 유품을 햇볕에 말리고 깨끗이 씻어 정리했다.

진 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무명천 두건과 턱 가리개가 검은 천에 바느질로 붙은 작품은 일종의 제의적 설치미술의 성격을 띤다.

보존위는 4·3의 아픔을 평생 간직한 채 살아온 진 할머니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그녀의 삶터를 이처럼 새단장했다.

삶터 재현에 전시기획을 맡은 화가 양미경씨는 “할머니 유품에서는 바느질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바느질하며 생전의 고통을 견디어왔을 것”이라며 “삶터 전시기획은 고인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양씨는 “할머니 삶터는 박물관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들이 고인의 유품을 직접 만져보며 그녀를 느껴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라고 덧붙였다.

진 할머니 삶터는 앞으로 마을에서 관리한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월령리사무소(796-2589)를 통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진 할머니는 4·3이 발발한 이듬해인 1949년 1월, 옛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후, 한평생 하얀 무명천으로 턱 부위를 감싸고 살다 2004년 9월 9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영수 기자 opindoo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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