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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고]“제주공동체 존립위한 저항”박찬식 제주4.3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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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03-30 (일) 16:59:17 | 승인 2008-03-30 (일) 16:59:17


   
 
  박찬식 (제주4·3연구소 소장)  
 
1947년 3월 세계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던 때 한반도의 남쪽 끝 제주섬에서는 미군정 당국의 발포에 항의해 민·관 총파업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어서 1년 뒤 4월 3일 일어난 무장봉기로 제주사회는 세계적인 냉전의 구도에 숙명적으로 편입되어 갔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굳어져 가던 시점에서 일어난 4·3은 외적 요인에 의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미리 체험하게 하였다. 제주섬은 2년 뒤 발발한 한국전쟁의 폭력을 예견한 한국현대사의 예언자 노릇을 하였다. 해방과 자치, 통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억압과 지배, 분열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의 가늠자가 되었다.

제주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4·3은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했던 과거 전통시대 제주민란의 전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제주의 독립·자치·자율의 전통과 연대와 공동체성이 외부의 힘에 의해 억눌려 파괴되어 갈 때 제주공동체가 ‘존립’(存立)을 위해 저항했던 것이 4·3이었다. 제주도민 대다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토벌대의 대학살이 공동체를 절멸시켜 갈 때, 오직 침략당한 공동체를 지키려는 일념으로 저항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4·3은 엄청난 민간인학살로 점철된 인권 유린의 사태임에 주목해야 한다. 4·3은 단순한 인명살상이 아니라 ‘레드헌터(Red Hunt)’란 표현처럼 제주도민을 인간이 아닌 사냥감으로 여기며 집단 학살시킨 ‘제노사이드(genocide)’에 해당된다. 따라서 영령에 대한 추념을 통하여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인간적 종교적 의미로서의 4·3이 갖는 당위성이 존재한다. 4·3 당시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성찰, 민족공동체로서의 동질감이 있었다면 민간인 대량 학살의 사태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미군정 통치시기에 일어난 1947년 3월 1일의 경찰 발포로 인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한마디의 공식 사과 없이 탄압으로 일관했다. 1948년 4·3봉기에 대해서도 김익렬 제9연대장이 주장한 선무작전을 수용했다면 뒷날 엄청난 인명 피해는 비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신생 대한민국이 4·3을 ‘반란’으로만 여기지 않았어도 민간인 대량 학살을 가져온 초토화 작전은 실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이 4·3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재했음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박찬식,제주4·3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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