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수십년간 진행됐지만 60년전 발생한 4·3은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완성되지 않은 역사’로 남아 있다.

1948년 4·3 발생 전·후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이어 군부정권이 ‘공산무장폭동·반란’으로 억압했던 제주4·3의 이름은 1960년 4·19혁명을 거치면서 ‘사건’으로 환원됐지만 이듬해의 5·16 군사쿠데타로 좌절됐다. 특히 지난 1987년 6월 항쟁 이후 본격화된 제주사회의 진상규명운동으로 지난 2000년 1월 ‘제주4·3특별법’이 갖은 어려움속에서 제정됐지만 4·3은 여전히 ‘사건’에 머무르고 있다.

제주4·3의 실상과 성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지난 3월28일 제주시 봉개동 평화공원에서 문을 연 제주4·3평화기념관도 4·3의 비석을 세우지 못한 채 눕혀 놓고 있다. 평화기념관의 첫 방문장소인 ‘프롤로그’ 공간에는 3m 크기의 하얀 비석 ‘백비’(白碑)가 누워 있다.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바르게 규명되지 않은 역사이기에 4·3은 잠들 수 없는 역사임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백비가 누워 있는 제주4·3의 시작 공간은 4·3이 정명되지 못한 역사임을 의미한다. 희생자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4·3의 정명된 역사를 만들고, 진실의 비석을 세우는 몫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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