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인 혼백 제주로 돌아와
2·3세대 추모 여건 마련돼

“영령들이시어! 무자년 봄 평화로운 제주 땅에 4·3이라는 때 아닌 광풍이 불어 한라산 기슭으로 숨어들어 혹독한 한 겨울을 보내고,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말에 하산했지만 포승줄에 묶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곳 전주 땅까지 끌려와 차디찬 형무소에서 몇 년 이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도 잠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시어 유골조차 거두지 못하고 지내온 지 어언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옛 전주형무소 터에서 4·3 행방불명인 유족들이 혼백을 모시며 올린 축문에서)

## 통한의 역사 현장에서

광주·전주·목포형무소 옛터. 그리고 전주형무소 수용자들이 끌려가 희생된 전주 황방산 학살터.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다. 도심개발로 아파트 단지와 주택 등이 들어서 형무소 옛터의 흔적은 현재 찾아볼 수 없었다. 황방산 학살터의 경우, 과거 학살이 이뤄졌다는 기록으로 산기슭에서부터 엄숙한 분위기가 전해졌고, 이 곳에 들어선 납골당과 장례식장으로 인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느낌마저 느낄 수 있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호남위원회 유족들은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돌며 한 줌의 흙을 떠왔다.

자신의 부모나 형제가 4·3이라는 광풍 속에 이 곳 광주·전주·목포형무소까지 끌려왔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 발발 이후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희생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옛 형무소와 학살터에서 떠온 흙에 행방불명인들의 혼백이 모셔져 있다는 위안만을 삼을 뿐이다.

혼백을 모시고 예를 올리는 순간,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유족들의 모습에서 4·3의 남긴 상흔은 반세기가 넘은 현재까지 ‘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었다.

   
 
  ▲ 4.3희생자유족회 전국 형무소 옛터 및 학살터 행방불명인 혼백 모시기 행사 2일째인 31일 오전 호남위원회 유족들이 목포 석산학살터 자리에서 혼백을 모시는 제를 올리고 있다.<김대생 기자>  
 

## 평화·인권을 향해

전국의 옛 형무소와 학살터, 그리고 제주에서 모셔온 혼백이 유족들의 애도 아래 한자리에 모였다. 4·3이 발발한 지, 60년이 지나 이제 영면하기 위해서다.

지난 31일 제주시 관덕정에선 이들 혼백을 위로하는 합동노제가 봉행됐다. 60년이란 세월의 수레바퀴를 돌아 다시 무자년, 이제야 행방불명인들의 혼백을 제주로 모시게 됐다.

유족들은 행방불명인 혼백 합동노제를 통해 반세기 넘도록 고향에 모시지 못했던 한(恨)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4·3행방불명인 혼백 모시기 행사는 4·3 60주년을 맞아 이뤄진 의미 깊은 추모행사다. 화해와 상생을 넘어, 평화와 인권을 지향, 4·3 ‘3세대’에게 4·3역사를 전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유족들이 직접 옛 형무소와 학살터 현장을 찾아 위령제를 지내며, 행방불명인들의 원혼을 위로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유족들은 제주4·3평화공원에서 4·3 2·3세대가 함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4·3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미래세대가 완전한 4·3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의 과제 등을 공유하게된 것이다.

특히 유족들이 이미 고령화돼 후손들에게 4·3의 올곧은 진실을 전하기 힘든 상황에서 행방불명인 혼백을 제주로 모셨다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4·3정신을 잇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족들은 “이제 자식, 손자들과 4·3평화공원을 찾아 희생된 조상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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