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굳어진 역사 아니다”

   
 
   
 
4·3 60주년을 맞아 제주4·3평화기념관 예술전시실에서 강요배의 4·3 역사화 ‘동백꽃 지다’ 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전시 첫날 강요배씨를 만났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띈 작품 ‘시원(始原)’. 팽나무 아래로 바람이 지나고, 먼 곳의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에 왠지 모를 불안함이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할머니의 시선은 역사 이전의 일들,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향하고 있어요.” 강씨의 설명이다. 할머니의 시선은 곧 강씨가 ‘동백꽃 지다’ 연작을 그려나갈 당시 그가 가졌던 지향이기도 하다.

강씨는 지난 1992년 화집 ‘동백꽃 지다’ 를 내고 같은 이름의 전시회를 통해 4·3과 제주 역사를 알려왔다. “1987년은 민주화다 뭐다 해서 분위기가 그랬어요. 마침 한겨레신문이 창간하고 삽화를 연재할 때라 현기영씨와 친분을 쌓게 됐고 4·3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죠. 관심이 갔어요.”

강씨는 이 거대한 역사를 꿰어낼 수 있을까 두려웠다. “처음에는 고통을 겪지 못한 내가 4?3을 이해할 수 있을까,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4·3에 대한 자료도 많지 않았죠. 책이 한 열권정도 됐나. 다만 도대체 인간이 무어고 역사가 무어냐, 삶은 또 뭐냐. 이 생각을 늘 하면서 4·3을 공부했어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강씨는 ‘동백꽃 지다’의 연작들을 그려냈다. 그는 4·3. 특히 그 가운데서도 민중들에 집중했다. “4·3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혹한 희생이 있었다는 겁니다. 참혹한 희생은 대개 민중들이었고요. 그들이 어떤 피해를 받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그 생각은 어느 방향이었는가에 중심을 두고 그림을 그렸어요. 가능하면 4·3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어요.”

그는 4·3을 이야기하며 ‘민중들의 지향점’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민중들은 특정한 ‘주의(主義)’를 지향하지 않죠. 나도 ‘-주의자’는 아니에요. 다만 과거 민중들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봐요.”

그는 ‘동백꽃 지다’의 연작들을 통해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인간과 삶, 역사 그러한 이야기를 4·3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어요.”

4·3 60주년을 맞는 그의 소회는 남다르다. “4·3은 굳어진 역사가 아니에요.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지금도 북한이 있고 미국이 있죠.”

요배(堯培). 이름이 특이하다. 4·3때 같은 이름 때문에 누명을 쓴 사람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4·3을 겪으며 강씨 아버지는 자식을 낳으면 두 번다시 없을 특이한 이름을 짓겠다 결심했고, 그의 아들은 요배라는 이름을 얻었다.

4·3은 60년이 흘렀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그의 이름에도 상흔이 남아있다. 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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