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도문예회관 전시실

   
 
   
 
땅이 열렸다. 정지된 시간동안 누운 자는 누운 대로 앉은 자는 앉은 대로 포개진 채, 무더기의 뼈로 드러났다. 우리의 기억이 재구성되는 순간, 개토(開土). 땅을 연다는 행위는 진실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지이고 ‘들여다본다’는 것은 미술이 가지는 본연의 성질과 상통한다. 탐라미술인협회가 4·3 60주년 기념 4·3미술제의 주제를 ‘개토-60년 역사의 변증’으로 정한 이유다.

전시장 한쪽 벽면이 오래된 얼굴들로 가득 찼다. 단발머리 소녀와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남자, 빡빡머리 남학생, 곱게 머리를 족진 할머니. 마치 옛날 졸업앨범처럼, 수십개의 얼굴이 아스라하고 위로 뼛조각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박경훈 작 ‘개토(開土)’다.

탐미협이 주최하는 제15회 4·3 미술제가 열리고 있다.탐미협이 지난 60년간 4·3을 옭아매 온 그 견고한 표면에 주름을 내는 작업을 준비, 오는 7일까지 마련되는 4·3미술제에 역량을 풀어놓았다. 지난 1994년부터 매년 이어온 4·3미술제, 올해는 1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덩어리로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해를 멜젓(멸치젓갈)에 비유, 희생의 처참함을 담아낸 정용성씨의 ‘멜젓처럼’, 샛노란 꽃잎들이 학살의 이미지와 대비, 죽음의 공포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김수범씨의 ‘한중가-먼길 1·2·3’, 오석훈의 ‘살(殺)의 정치사-이슬로 지다’ 등의 작품이 관람객에게 그 날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이와함께 오는 26일 탐미협은 작가들과 함께 떠나는 4·3 미술기행을 마련한다. 작가들이 4·3 평화공원과 지금은 없어진 종남마을 등을 방문, 4·3의 현장에서 함께 스케치하고 4·3의 역사와 예술에 대해 토론하는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참가희망자는 7일까지 전시장 데스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문의=758-033/018-627-7933. 문정임 기자 mungd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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